항목 ID | GC077008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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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燕東合湖書院 |
이칭/별칭 | 합호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원합강1길 262-6[합강리 10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경희 |
건립 시기/일시 | 1716년 - 연동 합호서원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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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9년 - 연동 합호서원 훼철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31년 - 연동 합호서원 개축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5월 17일 - 연동 합호서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호 지정 |
문화재 해지 일시 | 2012년 12월 31일 - 연동 합호서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호 지정 해지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12월 31일 - 연동 합호서원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제2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연동 합호서원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연동 합호서원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원합강1길 262-6[합강리 104] |
원소재지 | 연동 합호서원 -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합강리 104 |
성격 | 건물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안승표 |
관리자 | 순흥안씨 합강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합강리에 있는 조선시대 사설 교육기관.
[개설]
합호서원은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인 순흥안씨들이 1716년(숙종 42) 안향의 영정을 봉안하고 친필을 보관하기 위하여 후손인 안경신(安景信)·안경정(安景精) 등이 세운 영당으로, 안향 영정을 봉안하고 봄·가을에 제향을 지내 왔다.
연동면 합강리에 세거한 순흥안씨들은 유학자이자 선조인 안향의 영정을 모시고 추앙하는 한편, 유교 강학 장소로써 교학의 터전으로 삼기 위하여 합호서원을 건립하였다.
순조 때 유림 임동승(林東昇) 등이 협력하여 합호서원으로 승격시키기에 이른다.
합호서원은 유림들만 모여 설립한 봉암서원이나 덕성서원과 달리 후손들이 주축이 되어 건립한 서원이다.
영남학파나 기호학파 구별이 없는 서원이기도 하다.
합호서원에 추향된 안향은 고려시대 명신(名臣)이자 학자이다. 호(號)는 회헌(晦軒), 초명(初名)은 유(裕), 고향은 순흥(順興)이다.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에 들어가 『주자전서』를 필사하여 돌아와 주자학을 연구하고 전파한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이다. 이후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여 고려 말 유학 진흥에 큰 공적을 남겼다.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순흥 백운동(白雲洞)에 안향의 사묘(祠廟)를 지어 백운동서원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한국 서원의 시초가 되었다.
[위치]
연동면 소재지 북동쪽 합강마을 골짜기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합호서원은 1716년(숙종 42)에 안향의 영정을 봉안하는 영당으로 처음 건립되어, 순조 때 서원으로 승격되고 합호서원으로 불리었다.
1869년(고종 9)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후손들이 합호서원을 ‘합호사(合湖祠)’라 고쳐 부르고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享祀)[제사]를 지냈다.
1931년경에 후손 배호를 비롯한 유림들이 서원 복원을 추진하여 건물을 증축하는 등 변화를 보이다가, 1949년에 유림 유치각(兪致珏)·임헌상(林憲商)·장인환(張寅煥) 등이 여러 유림들과의 협의를 거쳐 전국 218개 향교의 동의를 얻은 후 성균관에 상신하여 서원 복설 허가를 얻게 되었다.
마침내 1950년 합호서원으로 헌액(獻額)[우수한 업적을 인정받아 명예로운 자리에 오름]되어 지금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현재는 안향만 독향(獨享)[사당이나 서원에서 한 사람만의 신주를 모셔 두고 제향하는 일]하고 있다.
[형태]
합호서원은 북의 출동산 자락이 남으로 흘러 끝을 맺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양쪽으로 실개천을 두고 그 건너 쪽으로 구릉이 솟아 서원을 감싸고 있는 정남향의 자좌오향(子坐午向)이다.
경내 건물로는 사우, 중앙 신문(神門)과 양 옆 협문(挾門)으로 된 내삼문(內三門), 강당인 성의재(誠意齋), 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형태이고, 강당인 성의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태이다.
성의재 북편에는 전사청이 있다. 맞배지붕에 익공식 구조의 검소한 규모가 선비정신을 닮은 듯하다.
내삼문을 지나면 사당과 강학 공간이 나온다. 합호서원의 배치 구조는 사당과 강학 공간이 나란히 위치하는 다소 특별한 형태를 보인다.
[현황]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호로 지정되었다가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으로 해지된 후, 2012년 12월 31일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제2호로 다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로 다시 재지정되었다.
세종특별자치시 개발 부지에 있었지만 다행히 이전하지 않고 현 위치에 보존하기로 결정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원래 연기유림회 주최로 해마다 음력 9월 12일에 제사를 지내 왔으나, 4년 전쯤부터 농사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 음력 3월 3일로 날짜를 바꾸어 1년에 한 번씩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제품(祭品)은 4변(邊) 4두(豆)이다. 제사음식 비용은 전액 종중에서 충당하고, 종중의 여자들이 모여 정성스럽게 음식을 마련한다. 종인들이 의관을 정제하고 사당에서 제사를 지낸다.
종중 사람들이 주관하여 제를 올리지만 마을 사람들도 구경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유물로는 안향의 영정과 친필이 소장되어 있다. 안향 영정은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보관하고 있고, 합호서원에는 모사 영정을 만들어서 모셔 두었다. 재산으로는 대지 약 1,160㎡[약 350평]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합호서원은 조선 후기에 흔히 보인 문중서원 형태의 서원으로, 서원의 건립 과정을 통하여 순흥안씨 사족의 향촌(鄕村)[시골 마을]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따라 철거되었다가 후손들과 유림들에 의하여 복설되는 등 서원의 복원 과정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