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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669
한자 李廷煥
영어공식명칭 Yi Jeonghwan
이칭/별칭 휘원,송암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철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04년(선조 37)연표보기 - 이정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33년(인조 11) - 생원이 됨
몰년 시기/일시 1671년(현종 12)연표보기 - 이정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81년(숙종 7) - 이정환 정려 명 받음
사당|배향지 전주이씨 삼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금암리 174-22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전주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가계]

이정환(李廷煥)[1604~1671]의 자는 휘원(輝遠)이고, 호는 송암(松岩)이다. 무오사화 때 화를 입은 한재(寒齋) 이목의 5세손이다.

[활동 사항]

이정환은 1633년(인조 11)에 생원이 되었다. 병자호란의 국치를 통분히 여겨 외출을 삼가며 비가(悲歌) 10수를 지었다. 특히 효행이 남달라 부모상을 당하여 6년간 시묘살이를 하면서 죽으로 끼니를 이었다. 시묘살이를 하면서 죽으로 끼니를 이었다는 일이 소문으로 널리 퍼졌고, 1666년(현종 7) 현종이 온양으로 거둥(擧動)[임금의 행차]할 때 이정환의 효행 소문을 듣고 백미를 보내 포상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정환은 1681년(숙종 7)에 명정을 받았다. 1723년(경종 3)에 이세구(李世龜)가 행장(行狀)을 짓고 남구만(南九萬)이 묘표를 썼다. 이정환의 장손자 이경설(李景卨)[1650~1708]과 둘째 손자 이경익(李景益)[1655~1708]도 할아버지를 이은 형제 효자로, 1699년(숙종 25)에 명정(銘旌)[충·효·열을 행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주는 최고의 포상]을 받았다. 세 명의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원리 만자동에 있었으나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금암리로 이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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