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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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基鼎妻光山金氏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응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철원 |
추모 시기/일시 | 1877년(고종 14) - 박기정 처 광산김씨 정려 명 받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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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952년 - 박기정 처 광산김씨 정려 건립 |
사당|배향지 | 열녀 광산김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응암리 산42 |
성격 | 열녀 |
성별 | 여 |
본관 | 광산 |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개설]
박기정의 부인으로, 남편은 무안박씨이다. 혼례 후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죽자 수절하였다. 홀로 시모를 극진히 봉양하고 양자를 들여 가문의 대를 잇게 한 열녀이다.
[가계]
아버지는 광산(光山) 사람 김귀택(金龜澤)이다.
[활동 사항]
광산김씨는 무안 사람 박기정(朴基鼎)과 혼례를 치르고 3일 만에 남편과 재행(再行)[혼인한 뒤에 신랑이 처음으로 처가에 감] 차 친정에 갔는데 박기정이 갑자기 병을 얻어 자리에 누웠다. 광산김씨가 정성을 다해 간병하였으나 차도가 없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남편에게 먹이는 등 정성을 다해 남편의 병세가 다소 차도가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얼마 가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광산김씨는 지성으로 남편 삼년상을 하고 시댁으로 돌아와 홀로 시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였다. 후사(後嗣)[대를 잇는 자식]가 없는 광산김씨는 멀리 당진에 사는 친척을 양자로 들여 대를 잇게 하였다. 양자 박응현도 효자로 알려져 세금을 면제 받았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1877년(고종 14)에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동네에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를 받았고, 1952년 당시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응암리 산42번지에 정려가 건립되었다.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응암리 산42번지이다. 열녀 광산김씨 정려는 연기군 향토유적 제22호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22호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