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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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敬傑 |
영어공식명칭 | Bae Gyeonggeol |
이칭/별칭 | 호이,노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경윤 |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의병.
[개설]
배경걸은 임진왜란 때 중봉 조헌의 종사관으로 들어가 청주성 전투에서 많은 적병을 무찔러 공(功)을 세웠다.
[가계]
배경걸[1536~1634]은 성산배씨 14세손으로, 자는 호이(豪而), 호는 노천(蘆川)이다. 연동면 노송리의 성산배씨는 녹야당공파로 4대조인 직제학 배유(裵裕)[1403~1472]를 파조로 한다. 청산현감을 지낸 배달신(裵達臣)의 손자이며 배홍(裴泓)의 아들이다.
배경걸의 아들은 건릉참봉을 지낸 배언량(裵彦良)[1565~1628]이고, 며느리는 박도원(朴道原)의 딸 순천박씨이다.
노송리의 입향조는 배경걸의 손자인 배천의(裵天義)[1584~1654]이며, 1624년 이괄의 난 때 공(功)을 세워 진무일등공신에 녹권(錄券)[공신의 훈공(勳功)을 쇠에다 새겨서 만든 패]되었다.
[활동 사항]
배경걸은 남명(南溟)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의 침공을 피하여 왕이 몽진(蒙塵)[임금이 난리를 피하여 안전한 곳으로 떠남]을 하게 되자 몹시 비통해하며 통곡하였다.
배경걸은 즉시 항군을 소집해서 의병장 조헌의 진에 합류하여 청주성 전투에 참가,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1605년에 건원릉참봉을 제수(除授) 받았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