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1340 |
---|---|
한자 | 壺灘里地名由來 |
이칭/별칭 | 호려울,호여울,우래올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호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기대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0년 01월 15일 - 임형수 구연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7년 06월 20일 - 「호탄리의 지명유래」, 『금남면향토지』 986~987면 수록 |
성격 | 지명설화|마을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홍판서|몽골 합단|한희유|김흔|인후 |
모티프 유형 | 지명유래담|자연지형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호탄리의 지명 유래에 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호탄리 지명유래」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호탄리의 지명이 자연지형과 연관되어 있다는 지명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7년 금남향토지발간위원회에서 발간한 『금남면향토지』에 수록되어 있다. 임형수[남, 75세]가 구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호탄리는 마을이 항아리 모양이고, 금강의 여울이 마을 앞으로 흘러 한자로 호(壺)[항아리]와 탄(灘)[여울]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마을은 호여울 또는 우레올이라고도 한다.
1291년(충렬왕 17)에는 고려에 침입한 몽골의 합단(哈丹)[원나라의 반란 세력]이 마을의 여울을 피해서 가다가 원수산에 있던 고려 장군 한희유·김흔·인후에게 섬멸되었다고 한다.
또한 홍판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장재리에 있던 창고를 동쪽에 있는 마을 방향으로 옮겨 왔기 때문에 동창(東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호탄리라는 마을의 명칭이 자연지형과 연관되어 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여울이 흐르는 호탄리 마을의 자연지형으로 인하여 고려에 침입한 몽골의 합단이 여울을 피해서 가다가 패하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건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