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1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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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地名說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기대 |
[정의]
세종 지역에서 지명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서사 구조를 가진 이야기.
[개설]
세종특별자치시에서는 고인돌이 발견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논농사 흔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흔적을 통해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지역 곳곳에는 사람들이 살았고, 전쟁이 있을 때는 외진 곳을 찾아 숨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한 다양한 지명과 지명에 얽힌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승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지명의 유래 등 관련된 설화들을 통해 지역의 지형적 특성이나 그곳에서 산 사람들의 생활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지명설화의 특징]
사람은 일정한 공간에서 거주하고 생활하며 대를 이어가기에 흔히 뿌리를 내린다는 말로 표현해 왔다. 때문에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머무르는 공간에 명칭을 붙이고 머물렀다가는 장소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공간 명칭을 지명이라 한다.
사람들은 지명이 붙게 된 유래를 이야기하고, 이미 있는 지명이라면 지명의 뜻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설화를 통해 설명하기도 한다. 세종특별자치시에도 이와 같은 지명의 유래나 성격에 대한 설화가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지명설화를 소개하고 있는 『연기군지』에는 불곡, 뭇증골, 안터, 홍개터골, 검배, 바람재, 삼박골, 둔재, 우려울, 안버드내, 지랭이, 길재(질재), 서너미, 외앰이들, 청승모랭이, 시거리, 약삭골, 마근터, 너더리, 가장골, 달박골, 연못골, 수청골, 옥골, 희말, 안창, 섭골부터 백정지·함박산·만석골·불당골·가마골·군량골·벌말·권티골·피숫골·가느실·양짓말·봉두미·주막뜸·압실·아야목·바느실·말미·당마루·능골 등에 대한 지명이 주목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지명설화는 대체로 골짜기나 연못과 같이 지역의 지형적 특성에서 기인한 것과 해당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행동이나 삶의 방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또한 연개소문이나 임진왜란 등 역사적 인물 및 사건과 연관된 지명설화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공주와 청원군의 일부 지역이 포함되었다. 장군면의 송장산이나 부강면의 오룡기·망골 등에 대한 지명설화도 세종특별자치시의 지명설화로 새롭게 편입되었다. 이전에는 다른 지역에 속한 설화들이 현재 세종특별자치시의 지명설화로 포함되면서 세종 지역의 지명설화는 전체적인 분량도 늘어나고 내용 또한 더욱 풍요롭게 전개되고 있다. 다만 공간 범위가 새롭게 설정되고 지명이 변경되면서 역설적으로 이전의 지명이 사라지는 과정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세종특별자치시의 지명설화를 이후에도 전승하기 위한 지역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주요 지명설화]
「안터」는 금남면 호탄리에 안씨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도깨비 때문에 다른 장소로 사는 곳을 옮겼더니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지명이 유래한 지명설화이다. 「피숫골」은 임진왜란 당시 미곡리가 천하의 제일 가는 피란처였지만 왜구가 보낸 염탐꾼 중에 의하여 피란처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지명설화이다. 「구절골」은 일광사라는 절이 있던 곳에 대한 지명설화이다. 일광사가 있던 자리에는 아홉 마디 지팡이가 있어 구절골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대국터」는 산신이 대국을 두었고, 좋은 터라는 의미에서 연개소문이 대국지로 불렀다는 설화이다. 「홍개터골」은 금남면 영대리에 살던 홍개라는 사람의 집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이외에도 부자가 살았는데 망하였다는 의미에서 ‘망골’이라고 하거나 장수가 마을에 돌을 꽂자 이후 마을이 잘 살았다는 「석곡리 돌꽂이」 등도 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지명설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