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13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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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窟穴說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진오 |
[정의]
세종 지역에서 동굴[암굴 또는 토굴]의 이름이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세종 굴혈설화의 특징]
세종특별자치시에는 암굴[바위굴]이나 토굴 같은 동굴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동굴은 과거 전란의 도피처나 기자치성(祈子致誠)[아들 낳기를 기원하여 정성을 다하여 비는 일]의 상징으로 숭배되어 왔다.
지역별 굴혈설화로는 금남면의 「굴바위」와 「청승모랭이 금점굴」, 전의면의 「병풍바위굴」, 조치원읍의 「장군굴」 등이 확인된다.
[세종의 주요 굴혈설화]
「굴바위전설」은 금남면 봉기리 분홍 고개를 넘어 뒷산 중턱에 있는 굴바위에 내려오는 전설이다.
옛날 금슬 좋은 부부가 살았는데 아들이 없어 근심이었다 한다. 어느 날 남편이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자 아내도 따라나섰다.
나무를 하던 남편은 엎드린 형상을 한 바위를 발견하였는데 바위 밑에는 굴이 뚫려 있었다. 그런데 바위 틈새가 마치 여성의 음부처럼 생겼다고 한다.
부부는 산신령이 바위와 굴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여 그곳에서 치성을 드리고 벌어진 바위틈에 돌을 하나 집어 던졌다. 그러자 얼마 후 사내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은 바위를 굴바위라 불렀고, 굴바위에 치성을 드리고 돌을 던져 넣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