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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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七峰里 |
영어공식명칭 | Chilb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윤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마을 안에 봉우리가 일곱 개인 칠봉산(七峰山)[517m]이 있어 마을 이름을 ‘칠봉(七峰)’이라고 하였다. 칠봉1리의 자연 마을로 유촌(柳村)과 신기마[신기촌(新基村)]가 있고, 칠봉2리의 자연 마을로 사도실(思道室)[상촌(上村)·아랫마·사월곡(沙月谷)], 걸뜸[죽촌(竹村)·죽천(竹川)], 새터[신평(新坪)], 구암리(九巖里)[고암(古巖)]가 있다.
유촌은 칠봉산의 끝자락 대흥천(大興川) 변에 있으며, 하천 가장자리에 버드나무가 무성하게 자생하여 유촌이라 이름하였다는 설과, 옛날에 성인(聖人)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유촌 또는 양촌(楊村)이라 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조선 중종(中宗) 때 청주 정씨(淸州鄭氏) 정사중(鄭思中)이 입향하여 아들 정곤수(鄭崑壽)와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이곳에서 태어나면서 청주 정씨 집성촌으로 번성하게 되었다.
신기마는 유촌과 사도실의 중간 지점에 있다. 야로당(野老堂) 이순(李淳)의 후손들이 새터 마을 건너편에 새로 터를 잡아 마을을 만들고 신기(新基)라고 불렀다. 옛날 사천방의 신사당(神祠堂)을 모신 곳이라 하여 신기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고성 이씨(固城李氏) 집성촌이기도 한데, 고성 이씨 입향조인 성암(省庵) 이우(李佑)[1476~1519·1526]를 추모하는 경성재(景省齋)가 1922년 건립되었다.
사도실은 대가면에서 남쪽 수륜면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제913호선의 동쪽 아래에 자리한 마을로 우리나라 독립과 민주화 운동에 심혈을 바친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의 생가와 청천서원(晴川書院), 청천서당(晴川書堂) 등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과 그 후손들의 흔적이 있는 마을이다. 의성 김씨(義城金氏) 집성촌이다. 상촌(上村)은 신기마와 유촌 위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신기마와 유촌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며, 아랫마는 새터와 구암리, 걸뜸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새터와 구암리, 걸뜸에 사는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걸뜸은 대가면에서 남쪽으로 약 1.69㎞ 떨어져서 자리 잡은 곳이다. 사도실 남서쪽의 대흥천 변에서 동쪽을 향해 자리 잡았다. 마을 뒤 도로 위쪽에 각시 바위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개울가에 몇 집이 모여 살아서 ‘걸뜸’이라고 하였으며, 마을 뒷산에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죽촌 또는 죽천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 어귀에 수량이 풍부한 샘이 있는데, 수도 시설이 설비된 최근에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가뭄이 심할 때는 사도실과 새터 주민들이 함께 이용하였다.
새터는 대가면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약 1.87㎞ 떨어져 있다. 예전 여시 고개[호령(狐嶺)]로 오르는 길목에 자리한 새터는 사도실 앞들 가운데 터를 닦아 새로 마을을 세웠다 하여 새터 또는 신평이라 부른다.
구암리는 대가면에서 남쪽으로 약 2㎞ 떨어진 지점에 자리한다. 마을 뒷산에 거북처럼 생긴 바위 아홉 개로 이루어진 구암(九巖·龜巖)이 있어 18세기 중엽 마을이 들어서면서 구암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고암이란 이름은 현재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 지역은 옛날 절터였다고 하며, 일설에 의하면 마을의 형세가 ‘소쿠리 터’여서 동네 모든 가구의 살림이 넉넉하다고 한다. 성주 도씨(星州都氏)를 비롯한 제주 고씨(濟州高氏), 김해 김씨(金海金氏), 경주 최씨(慶州崔氏), 동래 정씨(東萊鄭氏) 등이 많이 산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이후 사월곡방(沙月谷坊)에 속하였다. 1845년(헌종 11) 성주목사 김횡(金鑅)[1784~1847]이 사월곡방을 사천방(沙川坊)으로 바꾸었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사천면의 구암, 신평, 죽천, 상촌, 유촌 일부와 여수(余水) 일부, 신기 일부를 합하여 칠봉동이라 하고 사천면과 대가면, 금파면을 합한 대가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대가면 칠봉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칠봉리는 이천의 발원지인 칠봉산[517m] 등의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다. 대흥천이 북동쪽으로 흘러간다. 칠봉리의 경계는 칠봉산이 이루는 산지 능선을 따라 구분되는데, 이것은 이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상류부에 속하는 하천인 대흥천의 분수계(分水界)[물이 흐르는 방향을 나누는 경계]가 칠봉리의 경계와 일치한다. 칠봉리 일대의 산지는 중생대 백악기에 만들어진 화강 섬록암 등의 기반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산지의 해발 고도가 성주군 관내에서 높은 편에 속한다. 대흥천은 칠봉산 북사면(北斜面)에서 발원하여 북동쪽으로 흘러 성주읍 대흥1리 개화대 마을 앞에서 대황천과 옥성천, 칠산천이 만나 경산교에서 이천으로 흘러가는 소하천이다. 과거에는 사천(沙川)이라 하였으며, 성주군 하천도에는 대흥천(大興川)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흥천에 의해 칠봉리 일대에 만들어진 평야로는 앞마들, 정지걸들, 칠봉들, 바우들, 큰들, 큰밑들이 있다. 산지 말단부와 평야가 만나는 지점은 자갈이 없는 황갈색 미사질 양토로 배수가 비교적 양호한 토양이 분포하며, 하천 인근 평야는 회갈색 양토로 배수가 약간 불량하다.
[현황]
칠봉리는 대가면의 동남쪽에 자리하여 동부와 남부는 성주군의 성주읍과 용암면, 서부는 성주군 수륜면과 대가면 금산리, 북부는 대가면 옥성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106㎢이며, 칠봉1리와 칠봉2리 2개 행정리에 151가구, 272명[남 139명, 여 13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가면 소재지로 이어지는 지방도 제913호선이 칠봉리의 북쪽 경계에서 서쪽 산자락을 둘러 남서쪽 수륜면 송계리로 이어진다. 대흥천이 만든 평야 중상류부에는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며, 하류부에서는 참외 농사를 많이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