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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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興理 |
영어공식명칭 | Yongheu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용흥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용포동(龍浦洞), 연포동(蓮浦洞), 이포동(伊浦洞), 율포동(栗浦洞)과 본아면(本牙面)의 하아동(荷牙洞), 가천면 일부와 용계동(龍溪洞) 일부를 합하고 ‘용흥동(龍興洞)’이라 이름하였으나 정확한 유래는 찾기 어렵다. 자연 마을로 용흥1리에 용전(龍田)[용포(龍浦)]과 용계(龍溪)[잉기촌]가 있고, 용흥2리에 서치미[서치산(棲雉山)·연포(蓮浦)·이포(伊浦)], 용흥3리에 율포(栗浦)[율리(栗里)]가 있다.
용전은 대가면 행정복지센터에서 북동쪽으로 직선거리 2.5㎞ 정도에 자리하며 도룡산(渡龍山)[95.5m]에 둘러싸여 있다. 마을 뒤 도룡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가에 자리하여 용포라 불리다 마을 앞 밭 가에 ‘용바위’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어서 용전으로 고쳐 불렀으나 지금은 바위가 없다. 용계는 용전에서 도룡산 능선 넘어 동쪽으로 400m 정도 떨어져 자리하며, 마을 앞에 넓은 배달들이 이천(伊川) 변을 따라 펼쳐져 있다. 마을 뒷산인 도룡산에서 따와서 용계촌(龍溪村)이라 하였는데, 잘못 읽어 잉기촌이라 불렀다고 한다.
서치미는 마을 북서쪽에 있는 약 60m 높이의 낮은 구릉지인 서치뫼의 음이 변하여 불리게 된 것으로, 서치뫼는 꿩이 많다고 하여 불렸던 이름이다. 마을의 지형이 연꽃 봉오리처럼 생겨서 연포(蓮浦)로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황산(凰山) 이탁(李琢)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1923년경 지은 황산재(凰山齋)의 「황산재기(凰山齋記)」에 황지(凰池)의 남쪽이자 연산(蓮山)의 북쪽에 수풀 골짜기가 깊숙하며 텅 빈 곳이 있어 ‘연포’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또 마을의 동북쪽으로 이천이 흘러 이포라 부르기도 하였다.
율포는 서치미와 군도 제12호선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 자리하며, 서부에는 북동류하는 흥산천을 넘어 성주군 벽진면과 접한다. 성산 이씨(星山李氏) 이진영(李震英)이 입향할 당시 밤나무가 무성하여 율리라 하였는데, 이후 19세기 초 후손 이정화(李廷和)가 ‘포(浦)’ 자를 넣어 율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대부분 율포라 부르며 마을 앞을 흐르는 작은 개울을 중심으로 아침 뜨는 해를 받는 쪽 마을을 큰뜸[양지뜸], 반대쪽 군도 제12호선을 접한 쪽의 마을을 작은뜸[음지뜸]이라고 나누어 부른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이후 대부분 지역이 대가곡방(大家谷坊)에 속하였다. 1845년(헌종 11) 성주목사 김횡(金鑅)[1784~1847]이 대가곡방을 대가방(大家坊)으로 바꾸었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용포동, 연포동, 이포동, 율포동과 본아면(本牙面)의 하아동(荷牙洞) 일부와 용계동(龍溪洞)의 일부를 합하여 용흥동으로 하고 대가면과 금파면, 사천면을 합한 대가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대가면 용흥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용흥리는 남쪽 산지와 북쪽 충적 평야로 구분된다. 산지는 남서쪽 약 170m 높이의 산지를 제외하면 용흥1리 용전 뒤 북쪽에 서 있는 도룡산[95.5m]을 비롯하여 서치미 북서쪽에 자리한 언덕 서치뫼[60m]와 북쪽의 동산[61.8m] 등 대부분 100m 이하의 구릉지성 산지이다. 주요 하천은 용흥3리 율포 상류에서 발원하여 못골 저수지에 모였다가 흥산천(興山川)에 합류하는 길이 약 700m의 율포천(栗浦川) 등을 포함하여 이들 남쪽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안골, 당산골, 안당산골, 못골, 왕사골, 왕자골 등의 골짜기를 형성하며, 용흥리를 가로질러 북쪽으로 흘러 흥산천이나 이천으로 유입한다. 용흥리의 하천이 범람하면서 지역 내 배달들, 배들, 황삼들 등의 충적 평야를 만들었다.
[현황]
용흥리는 대가면의 동북쪽에 자리하여 동부는 성주읍 대흥리, 남부는 대가면 옥성리, 서부는 흥산천 넘어 벽진면 봉계리, 북부는 이천 넘어 벽진면 봉계리, 성주읍 용산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78㎢이며, 용흥1리와 용흥2리, 용흥3리 3개 행정리에 184가구, 323명[남 151명, 여 17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2007년 개통한 중부 내륙 고속 도로가 용전과 서치미 사이를 남북 방향으로 지나며, 중부 내륙 고속 도로와 교차하면서 동서 방향으로 군도 제12호선이 용전과 서치미, 그리고 율포를 지나간다. 문화 유적으로는 조선 중종(中宗) 때 첨정(僉正)에 오른 괴산(槐山) 이대웅(李大雄)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한 괴산재(槐山齋), 조선 전기 유학자인 기국(杞菊) 이중화(李重華)를 추모하기 위한 기국재(杞菊齋), 조선 숙종(肅宗) 때 선전관을 지낸 경암(警庵) 이진호(李晋琥)의 6세손 중 이기공(李基鞏), 이기준(李基準), 이기두(李基斗), 이기수(李基受), 이기태(李基泰), 이기한(李基漢), 이기조(李基肇), 이기영(李基永) 8형제의 우애를 추모하기 위한 팔우당(八友堂), 조선 후기 유학자 연은(蓮隱) 이호석(李昊錫)[1872~1928]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한 연은재(蓮隱齋), 조선 후기 통정대부 중추부지사(通政大夫中樞府知事)에 제수된 황산(凰山) 이탁(李琢)[1591~?]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한 황산재(凰山齋), 연호(蓮湖) 이달현(李達鉉)을 추모하기 위한 연호재(蓮湖齋), 성산 이씨(星山李氏)의 선대인 율은(栗隱) 이경규(李敬奎)를 추모하기 위한 율은재(栗隱齋) 등이 있다. 또한 서치미 북서쪽 언덕과 율포 산자락 북쪽 묘지 주변에 고인돌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