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690 |
---|---|
한자 | 李正寧 |
영어공식명칭 | I Jeongnyeong |
이칭/별칭 | 단보(端父),장절(章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정철 |
[정의]
조선 전기 본관이 성주인 문신이자 태종의 부마.
[가계]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단보(端父).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말 문하부(門下府) 종이품 관직인 문하평리(門下評理)를 지낸 이인민(李仁敏)이다. 할아버지는 개국공신이고 좌의정을 지낸 이직(李稷)[1362~1431]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윤 이사후(李師厚)이다. 부인은 태종의 아홉째 딸 숙혜 옹주(淑惠翁主)이다. 아들은 형조판서와 우찬성을 지낸 이집(李諿)[1438~1509]이다. 시호(諡號)는 장절(章節)이다.
[활동 사항]
이정녕(李正寧)[1411~1455]은 1425년(세종 7)에 숙혜 옹주와 혼인하여 성원군(星原君)에 봉해졌다. 세종에게 능력을 인정받아서 1433년(세종 15) 정이품 상계 품계인 정헌대부(正憲大夫)가 되어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43년 풍수학 제조(風水學提調)·성균관 직강으로 있을 때 성주에 원손(元孫) 단종의 태실을 두기 위해 장경묘(長庚墓)[성주 이씨 시조 묘]를 다른 곳으로 이장해야 된다는 조정의 결정을 무시한 죄로 이듬해 삭직되었다. 1447년(세종 29) 의금부 제조·충청도관찰사를 지내고, 1449년(세종 31) 종일품 품계인 숭덕대부(崇德大夫)에 올랐다. 1450년(세종 32)에 숭덕대부(崇德大夫) 성원위(星原㷉)로 고쳐서 제수되었다. 세종은 이정녕을 여러 번 기용하였는데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따르면 학식과 관리로서의 재주가 있었다. 부인 숙혜 옹주보다 먼저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별도로 남긴 저술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단종실록(端宗實錄)』에 나온 이정녕의 졸기(卒記)에 이정녕이 학문을 좋아하였고, 천문, 지리, 의약, 복서(卜筮)의 설에 널리 조예가 깊었다고 나온다.
[묘소]
묘는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에 있는 숙혜 옹주 묘와 함께 있다. 장남 이집의 묘도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