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6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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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仁復 |
영어공식명칭 | I Inbok |
이칭/별칭 | 극례(克禮),초은(樵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명진 |
[정의]
고려 후기 성주가 본관인 문신.
[가계]
본관은 성주. 자는 극례(克禮), 호는 초은(樵隱). 시조 이순유(李純由)의 15세손이다. 원래 조상들이 대대로 경산부(京山府)[현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향리를 지냈다. 이순유의 12세손 이장경(李長庚)의 아들 대에 이르러 13세손 문열공(文烈公) 이조년(李兆年)[1269~1343]이 과거에 합격하여 중앙에 진출함으로써 가문의 격이 높아졌다. 할아버지는 이조년이고, 아버지는 이조년의 외아들인 검교시중(檢校侍中) 이포(李褒)[?~1373년]이다. 동생은 시중(侍中)을 지낸 이인임(李仁任), 판서(判書)를 지낸 이인미(李仁美),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를 지낸 이인립(李仁立), 주부(注簿)를 지낸 이인달(李仁達), 문하평리(門下評理)를 지낸 이인민(李仁敏)이다. 특히 아버지 이포와 동생 이인임과 더불어 삼부자가 고려 최고 벼슬인 시중을 지냈으니 그 가문의 명성이 짐작된다. 부인은 강거정(姜居正)의 딸이다. 아들은 이향(李向)과 이용(李容)이고, 이향의 아들이 이존성(李存性)이다.
[활동 사항]
이인복(李仁復)[1308~1374]은 태어나면서부터 용모가 뛰어나고 건장하였으며, 글을 읽을 줄 알게 되자 행동거지가 반듯하였다고 한다. 이조년은 이인복, 이인임 형제가 어릴 때 매번 등을 두드리면서 성주 이씨 가문을 번성하게 할 것이라고 칭찬하였다. 1326년(충숙왕 13) 나이 19세에 과거에 급제한 후 복주사록(福州司錄), 춘추공봉(春秋供奉)이 되었다. 1342년(충혜왕 복위 3)에 원나라의 과거에 급제한 후 대령로금주판관(大寧路錦州判官)이 되었다. 1342년에 고려로 돌아온 후 1344년(충목왕 즉위년)에 우부대언(右副代言), 밀직제학(密直提學)으로 승진하고 서연(書筵)에서 진강(進講)하였다. 1346년(충목왕 2)에 민지(閔漬)[1248~1326]의 『편년강목(編年綱目)』을 증보할 때 제학(提學)으로 이제현(李濟賢), 안축(安軸), 이곡(李穀)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1352년(공민왕 1) 조일신(趙日新)[?~1352]이 난을 일으켰을 때 토벌에 공을 세웠다. 1356년(공민왕 5)에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원나라를 다녀왔으며, 이후 계속 승진하여 참지중서정사(參知中書政事),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등을 거쳐 삼사우사(三司右使), 서북면도찰군용사(西北面都察軍容使)에 올랐다. 1364년(공민왕 13)에 찬성사(贊成事)로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다음 해 신돈(辛旽)을 경원할 것을 충간하였다가 파직을 당하기도 하였다. 1373년(공민왕 22) 기록에 이인복의 벼슬은 검교시중으로 나온다. 부친상을 당해 성주에 머무르다가 1374년(공민왕 23) 나이 67세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초은집(樵隱集)』이 있다. 『충렬왕실록(忠烈王實錄)』·『충선왕실록(忠宣王實錄)』·『충숙왕실록(忠肅王實錄)』 등 3대 실록과 『고금록(古今錄)』·『금경록(金鏡錄)』 등의 수찬에 관여하였다.
[상훈과 추모]
1375년(우왕 1) 충정왕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시호(諡號)는 문충공(文忠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