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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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丁酉義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사족들이 일으킨 의병 운동.
[개설]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났을 때 서산 지역에서 직접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른 여러 군현과 마찬가지로 서산의 사족들은 의병을 일으키거나 관리로서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호산록(湖山錄)』에는 정유의병을 일으킨 사람들로 유흡(柳洽)·곽설(郭說)·한효순(韓孝純)[1543~1621]·원득회(元得會)가 기록되어 있다.
[경과]
유흡은 서산 유씨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 유백순(柳伯淳)의 7세손이며, 강진현감 유억수(柳億壽)의 아들로 1594년 과거에 급제하여 안흥량의 만호가 되었다. 정유재란 중 재상 한효순이 유흡을 신임하였는데, 당시 한효순이 안흥량에서 군사를 규합하려 하자 따르는 사람이 오직 유흡뿐이었다고 한다. 이에 한효순이 부찰사가 되었을 때 또 사람됨을 보고 신임하여 다시 불러다 썼다. 곽설은 선대부터 서산에 농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처자를 인솔하여 서산에 와서 살면서 한효순의 종사관이 되어 모든 일을 소홀하게 다루거나 빠뜨리지 않고 부지런히 활약하였다.
한효순은 기축옥사(己丑獄死)에 연루되어 1590년(선조 23)에 파직되자, 같은 해 8월 서산 양림리에 은거하였다. 이 일대에 선대에 하사 받은 땅이 있었는데 작은 농사(農舍)를 짓고 정착했다고 하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해미현 남면 덕천마을[현 서산시 성연면 예덕리]로 이거하였다. 한효순은 임진왜란의 의병으로 『호산록』에 기록되어 있는데, 임진왜란뿐만 아니라 정유재란이 일어나던 해 겨울에는 부찰사가 되어 중국 장수 이유격(李遊擊)의 접대사로 활약하였다. 원득회는 원수경(元守敬)의 아들로 용인현감으로 있었으면서 정유재란 당시 난으로 피폐된 현을 복구하고, 백성들과 더불어 공역(公役)에 종사하여 병사들에게 군량미를 대는 등의 활약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