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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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洽 |
영어음역 | Yu Heup |
이칭/별칭 | 류흡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춘진 |
[정의]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서령[서산].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 유백순(柳伯淳)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강진현감을 지낸 유억수(柳億壽)이다. 서령 유씨는 고려 시대 이래로 서산에 자리 잡은 토착 성씨이다.
[활동 사항]
유흡(柳洽)은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 유억수가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먹게 하였다. 또 종기가 나서 침과 약으로 치료해도 차도가 없자 입으로 종기를 빨아서 낫게 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하늘이 효성에 감동하였다고 말했다. 유억수가 강진현감 재임 시 일처리를 잘못하여 벌을 받게 되자 유흡은 스스로 죄인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렀고, 늙은 어머니를 성심성의껏 봉양하였다.
유흡은 1594년 전주에서 과거에 급제하여 안흥량(安興梁)[현 태안반도 일대]의 만호(萬戶)가 되었다. 정유재란 때는 재상 한효순(韓孝純)이 안흥량에서 군사를 모으려고 하자 오직 유흡만이 그를 따랐다. 한효순은 이때 유흡의 됨됨이를 알아보고 부찰사가 된 뒤에 그를 불러 썼다. 후에 변방을 지키는 장수로 뽑혀 먼 길을 떠나게 되었을 때, 노모를 모시는 처지여서 떠나지 못하자 고을 사람인 유중립이 대신 가게 되었다. 그러자 유흡은 유중립도 노모가 있으니 자신이 가겠다고 나서며 변방으로 떠났다. 벼슬을 그만둔 뒤에는 향임[조선 시대 지방 자치 기관인 향청의 임원]이 되어 수령을 보좌하면서 유향소를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