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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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堅 |
영어음역 | An Gyeon |
이칭/별칭 | 가도(可度),득수(得守),현동자(玄洞子),주경(朱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해준 |
활동 시기/일시 | 1442년 - 안평대군의 초상을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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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43년 - 「이사마산수도」 그림 |
활동 시기/일시 | 1446년 - 「팔준도」 그림 |
활동 시기/일시 | 1447년 - 「몽유도원도」 그림 |
활동 시기/일시 | 1448년 - 「대소가의장도」 그림 |
활동 시기/일시 | 1448년 - 「동궁의장도」 그림 |
출생지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화천 3리 화동 |
기념관 | 안견기념관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 |
성격 | 화가 |
성별 | 남 |
본관 | 지곡 |
대표 경력 | 호군 |
[정의]
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화원.
[개설]
본관은 지곡. 자는 가도(可度), 또는 득수(得守). 호는 현동자(玄洞子), 혹은 주경(朱耕). 1619년(광해군 11) 편찬된 『호산록(湖山錄)』에 ‘본읍지곡인(本邑池谷人)’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활동 사항]
안견(安堅)은 세종~세조 대에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되어 그림을 그렸던 화원이다. 특히 세종 때 활동이 활발하였다. 시와 그림, 글씨에 빼어나 최경(崔涇), 강희안(姜希顔)과 함께 삼절로 불린다. 세종 때 종6품인 도화서 선화(善畵)에서 체아직(遞兒職)[현직을 떠난 벼슬아치에게 계속 녹봉을 주기 위해 만든 벼슬]인 정4품 호군(護軍)으로 승진하였다. 조선 전기 화원의 최고 벼슬이 정5품인 것에 비추어 파격적인 대우이다.
안견은 특히 산수화를 잘 그렸다. 조선 초기 중국의 그림을 모방하거나 절충하는 화풍이 유행하였으나 안견은 자신만의 화풍으로 독창적인 산수화를 그렸다. 『동문선(東文選)』에 실린 신숙주(申叔舟)의 화기(畵記) 편에 따르면 신숙주는 안견에 대해 “천성이 총민하고 정박하다. 고화(古畵)를 많이 보아 여러 장점을 취해 자신만의 화풍을 이룩하였다”라고 평하고 있다.
안견의 독창적인 화풍은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중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두 작품을 통해 안견이 북송 때의 대표 화가 곽희(郭熙) 등의 그림을 보고 공부하여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안견의 화풍은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화풍인 안견파가 생겨났으며 후대까지 영향을 끼쳤다. 안견은 산수 외에 초상화·꽃·매화와 대나무도 잘 그렸다.
[저술 및 작품]
현재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1447]와 안견이 그렸다고 전칭되는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가 남아 있다. 「비해당 25세진」[1442, 안평대군의 초상], 「이사마산수도(李司馬山水圖)」[1443], 「팔경도(八景圖)」, 「팔준도(八駿圖)」[1446], 「임강완월도(臨江翫月圖)」, 「대소가의장도(大小駕儀杖圖)」[1448], 「동궁의장도(東宮儀仗圖)」[1448] 외에 중국의 사신을 위해 「묵죽도(墨竹圖)」 등을 그렸다는 기록이 있으나 전해지지 않는다.
[상훈과 추모]
안견의 출생지인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서는 매년 안견 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1991년에는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에 안견기념관이 세워졌다. 이곳에는 안견의 작품을 모사한 「몽유도원도」 등 18점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