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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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殉敎址 |
영어의미역 | Hanti-Gongso Catholic secondary station |
이칭/별칭 | 죄인둥벙 |
분야 | 종교/기독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성태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7년 6월 - 서산 해미성당 주관으로 둠벙의 모양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석축 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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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35년 4월 1일 - 서산성당 신부 범바로 주도로 유해 발굴 |
현 소재지 | 천주교 진둠벙 순교지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읍내리 274-10] |
성격 | 못[池]|천주교 신자 처형지 |
관련 인물 | 병인 박해기 천주교 무명 순교자 |
크기(높이,길이,둘레) | 25m[길이]|약 90m[둘레] |
면적 | 500㎡ |
소유자 | 천주교 대전교구 |
관리자 | 해미순교성지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개항기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
[개설]
서산시 해미면 조산리의 여숫골 일대에는 해미천과 인접하여 들판으로 이어지는 늪이 많았다. 늪지대에는 움푹 패어 물이 고인 커다란 웅덩이가 있었는데, 진둠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둠벙’은 물이 고인 웅덩이를 가리키는 충청도 지방의 사투리이다.
[건립 경위]
진둠벙은 박해기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처형 방법의 하나인 익사 및 수장이 행해지던 곳으로, 해미순교성지(海美殉敎聖地)의 주요 순교 터 가운데 하나이다. 반역의 무리, 사학죄인(邪學罪人)으로 취급되었던 박해기 천주교 신자들에게 가장 잔인한 처형이 이루어졌던 곳이 여숫골이었다. 성안의 옥에서부터 많은 수의 교인들이 서쪽 해미천 변의 늪지로 끌려오곤 하였다.
여숫골에는 충청 지방 사람들의 방언으로 커다란 ‘둠벙’ 곧 ‘웅덩이’가 있었는데, 배교(背敎)를 거절하여 끌려온 사학죄인에게 여숫골의 둠벙은 공포를 자아내는 또 하나의 장소였다. 형졸들은 죄인들을 커다란 둠벙 속에 그대로 밀어 넣었다고 한다. 양팔이 꽁꽁 묶여 허우적거릴 기회조차 얻지 못한 교인들은 둠벙 속에 그대로 수장되었다. 사학죄인들이 빠져 죽던 이 둠벙을 그래서 사람들은 ‘죄인둠벙’이라 불렀다. 오늘날 ‘죄인둠벙’은 그 말이 줄어 ‘진둠벙’이라 불리게 되었다.
[위치]
서산시 해미면의 해미순교성지 내에 위치한다. 원형의 대성당이 자리한 성지 입구로부터 중앙의 해미순교성지기념관 맞은편에 물이 고인 웅덩이가 진둠벙이다.
[형태]
총면적은 약 500㎡이며, 길이는 25m, 폭은 11m, 둘레는 약 90m이다. 수목 조경과 함께 연못 형태의 웅덩이가 있고, 순교자를 형상화한 인물상 및 성모상이 설치되어 있다.
[현황]
2011년 현재 진둠벙 순교지의 소유자는 천주교 대전교구이며, 관리자는 해미순교성지이다. 해미순교성지의 중요한 순교 터로서 순례자들의 기도처가 되고 있다. 1935년 4월 1일 서산성당 신부 범바로의 주도로 유해가 발굴된 바 있다. 본래 진둠벙은 크게 물이 고인 웅덩이였는데, 1987년 6월 서산 해미성당의 주관으로 둠벙의 모양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석축을 쌓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여숫골에 조성된 해미순교성지는 한국 최대의 무명 순교 성지로 공인된 곳이다. 해미순교성지의 성당과 순교 성지 기념관 그리고 순교탑 등이 순교 성지로서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면, 진둠벙은 생매장 순교 터와 해미읍성 형장 길의 자리개돌과 함께 가장 참혹한 순교의 기억을 간직한 현장으로서의 생동감을 제공한다. 이는 구체적인 순교 현장 진둠벙을 많은 순례자들 찾고 묵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