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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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旨面-集姓村 |
영어음역 | Injimyeonui Jipseongcho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
집필자 | 이춘진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있는 집성촌.
[형성 및 변천]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의 집성촌은 고려 후기인 1300년대 후반에 형성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조선 시대에 여러 성씨가 입향하여 대대로 거주하며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1920년에 발간된 『조선의 성(姓)』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성씨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한 자료로 당시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의 집성촌을 살펴보면 다음 표와 같다. 인지면에는 서산의 여러 면 중에서도 특히 많은 수의 집성촌이 분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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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998년에 발행된 『서산군지』를 살펴보면 인지면에는 남산 김씨, 인정 유씨, 그리고 동막 한씨가 집성을 이루고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일제 강점기 자료의 집성촌과 상당한 차이가 나는데, 많은 집성촌들이 해체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송곡서원이 위치한 인지면은 서령 유씨의 세거지로서 주목되는 지역이다. 이곳의 서령 유씨는 야당리, 애정리, 둔당리에 걸쳐 대규모 집성촌을 구성하고 있다. 남정리의 김씨는 김해 김씨로 김희회(金喜會)가 1600년대 입향한 이래 그 후손이 390년 동안 거주하고 있다.
청주 한씨는 서산 지역에 1500년대 말 경에 입향하여 세거하고 있는 성씨로 그 후 분파되어 인지면 산동리에 한호겸(韓好謙)[1596~1672]이 터를 잡았다. 입향조인 한호겸은 월탄공 한효순(韓孝純)의 일곱째 아들로 의금부도사를 지냈고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입향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새방 한씨[새방은 성연면 평리] 한복일[한호겸의 조카]의 입향 시기를 미루어 추정하면 1620년 전후로 보인다.
청주 한씨는 1600년대 초 한효순이 서산에 터를 잡아 함께 내려와 살다가 인지면 산동리 동막에 분가하여 정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령 유씨, 김해 김씨, 청주 한씨는 각각 지역에서 불리어지는 이름이 다른데 김해 김씨는 남산 김씨, 서령 유씨는 인정 유씨, 청주 한씨는 동막 한씨로 불린다.
[자연 환경]
인지면은 서산시의 중앙에 위치한 지역으로 북쪽으로는 팔봉면, 남쪽으로는 도비산이 감싸 안고 있으며 서쪽에는 토성산(土城山)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부석면과 접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지역이 100m 이하의 저평한 지형을 이루고 있어 자연재해의 걱정이 없는 살기 좋은 곳이다. 또한 인지면의 동남부에는 간척 사업으로 조성된 넓은 평야가 있다.
[현황]
서령 유씨는 금헌(琴軒) 유방택(柳方澤)[류방택, 1320~1402]의 입향 이래 580여 년 이상을 세거하고 있으며, 주변에 많은 유적들은 서령 유씨 가문의 위상을 대변해 준다. 서령 유씨가 최고 전성기였을 때의 인구수는 850여 명에 달했다. 김해 김씨는 남정리에서 400여 년 동안 터를 지키며 살고 있으며 청주 한씨 역시 400여 년 가까이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오고 있다. 전성기 때에는 10여 가구가 살았다고 하나 현재는 5가구 내외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