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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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世居姓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개설]
세거 성씨는 15세기 전반까지 각 읍 성씨의 존재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주요한 사료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나오는 토성(土姓), 조선 시기의 재지 세력으로 동성(同姓) 마을[집성촌]의 성씨들이 대표적이다. 세거 성씨는 전근대 사회에서 지역 사회의 토착 세력으로 향촌 사회를 좌우하며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과 함께 농민층을 지배하였다. 서산 지역의 세거 성씨는 크게 토착 성씨와 이거 성씨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토착 성씨]
토성 이족 집단은 조선 건국을 전후한 시기에 있어서 서산 지역의 유력한 재지 세력으로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된 토착 성씨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토착 성씨 집단은 서산군의 유(柳)·송(宋)·두(杜)·문(文)·전(全)·방(房)·박(朴)·안(安)과 해미현의 백(白)·한(韓)·구(仇)·윤(尹)·염(廉)·곽(郭)·박(朴)·명(明)·여(余) 등이다. 이 토성들은 고려 말의 원 지배 하에서 성장한 성씨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 토성 세력은 고려 말까지 지방의 토호적 성격을 가지면서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호장층(戶長層)이었다. 호장층은 조선 건국 후 성리학적 지배 질서가 강화되고, 수령을 통한 지방 지배를 관철하려던 조선 건국 시에 중앙 정부의 집요한 노력에 의하여 대부분 행정 실무층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그렇지만 세종 대까지만 해도 세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들 중 대부분은 성리학적 소양을 가진 이거 사족(移居士族)들과 혼인 관계를 갖거나, 혹은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사족 가문으로 변신한 후 향촌 사회에서의 주도권을 계속 영위하게 된다. 서산 지역의 대표적인 토착 성씨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1. 서령 유씨(瑞寧 柳氏): 이미 고려 말부터 서산의 토착 성씨로 자리 잡고 있던 성씨로 유숙(柳淑)·유실(柳實) 부자, 유방선(柳方善)·유윤겸(柳允謙) 부자, 유방택(柳方澤)[류방택]·유백유(柳伯濡)·유백순(柳伯淳)·유사종(柳嗣宗)으로 이어지는 여말선초의 절의계 인물들을 배출하여 명성을 날린다.
2. 서산 정씨(瑞山 鄭氏): 서산 입향조는 정신보(鄭臣保)로 1237년 서산에 입향하였으며, 그의 아들 정인경(鄭仁卿)은 모든 문헌의 인물조에 가장 먼저 이름이 올라와 있을 정도로 서산의 대표적 토성이라 할 수 있다.
3. 서산 송씨(瑞山 宋氏): 『세종실록지리지』부터 조선 후기 읍지류를 발간할 때까지도 서산의 성씨 중 상위에 드는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4. 이씨(李氏):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지곡현과 인정부곡 부분에 기록되어 있다.
5. 합덕 문씨(合德 文氏)[洪州 文氏]: 각종 지리지에 토성이면서 지곡의 토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6. 서산 강씨(瑞山 姜氏): 강효윤(姜孝胤) 등의 활약상이 보인다.
7. 하씨, 김씨: 성연부곡의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이거 성씨]
다음은 이거 성씨의 현황이다. 서산의 사찬읍지인 『호산록』을 통해 보면 고려말에 입향하여 서산에서 대대로 세거한 청주 한씨(淸州 韓氏)가 가장 이른 시기 입향 성씨로 확인된다. 청주 한씨(淸州 韓氏)는 『호산록』을 지은 한경춘(韓慶春)의 집안이며, 고려조 한정덕(韓正德) 대에 입향한 이후 한정덕의 증손자인 한서정·한윤련·한영희·한경춘 4대에 이르기까지 활약상을 보인다.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이 끝나고, 서산 지역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토착 성씨가 난을 피해 서산을 떠나기도 하는 한편, 새로운 사람이 서산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이거하는 사람들은 이미 서산과 관련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해미·태안·덕산 등 인근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이었거나, 서산 사족과 혼맥(婚脈)을 이루고 있던 관계였다거나, 이미 선대부터 서산에 농장을 가지고 전부터 서산의 사족과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경우였다. 따라서 이때 이주한 사람은 짧은 시기에 서산의 새로운 세거 성씨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중 국가 전란 전후에 관리가 되어 활약하다가 서산에 머무르는가 하면, 처자를 인솔하고 서산으로 피난 온 경우의 대표적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한효순(韓孝純): 서산 사족 강효윤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면서 서산으로 이주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2. 곽설(郭說): 정유재란 당시 한효순의 종사관이 되어 출전하였는데, 선대부터 농장이 서산읍에 있었지만 다른 지역에 살다가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처자를 인솔하고 와서 살았다.
3. 이광국(李匡國): 임진왜란에 처자를 인솔하고 서산에 와서 살았다.
4. 임정로(任廷老): 임진왜란을 치르면서 피난할 계획으로 서산에 와서 살았다.
5. 신괄(申括): 피난을 위해 서산으로 이주했으며, 서산 사족들과 더불어 자녀를 혼인시키고 살았다.
이밖에 임진왜란 이후 이거한 성씨 가운데 기존 토착 사족들과 연계하여 점차 자신들의 터전을 넓혀간 성씨로는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있다.
금성 정씨는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사패지(賜牌地)가 있어 입향했으며, 평양 조씨는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기록된 조아(趙雅)가 입향하였다. 담양 국씨는 국현남(鞠賢男)이 효성으로 정려를 받은 것으로 보아 1600년대에는 서산에 입향한 것으로 보이며, 남양 홍씨는 『여지도서』에 기록된 홍성원(洪性源)·홍지원(洪智源) 등의 행적을 미루어 볼 때 1700년경 입향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