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9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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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地谷面-集姓村 |
영어음역 | Jigongmyeonui Jipseongcho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
집필자 | 이은우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있는 집성촌.
[형성 및 변천]
지곡면은 지리적으로 당진군 대호지면과 가까운 곳으로 당진 지역과 연관시켜 볼 수 있는 지역이다. 각종 문헌에서 지곡의 토성(土姓)으로는 안씨, 문씨, 이씨, 박씨를 들고 있는데 이들 성씨들의 집성촌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가장 오래 거주한 성씨는 전주 이씨로 효령대군의 넷째 아들 낙안군(樂安君)이영(李寍)의 6대손인 이지(李址)가 1600년(선조 33)에 입향 이래 412년간 지곡면 화천리 밤실에 세거해 오고 있다. 산성리 부성동에는 김해 김씨로 탁영(濯纓)김일손(金馹孫)의 후손 김백경(金伯慶)이 1600년대 입향 이래 세거해오고 있다. 또 금성 정씨정충신(鄭忠信) 장군 후손들이 1636년 입향 이후 376년 간 대요리 한우물마을에 세거하고 있다. 대요리에는 정충신의 묘소와 신도비가 있고 사우인 진충사가 건립되어 있다.
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의 성(姓)』에 조사된 지곡면의 대표적인 집성촌은 산성리 김해 김씨[40호], 대요리 나주 정씨[18호], 장현리 경주 최씨[23호]이다. 또한 1927년 『서산군지』에는 당시 자세한 인구 상황이 나타나 있는데 당시에 밤실의 이씨는 약 40여 명, 창성동의 김씨는 약 60여 명, 한천의 정씨는 약 30여 명이 살고 있었다.
밤실 이씨 후손 중에는 조선 시대에 의금부도사를 지낸 이명석(李命錫)이 있고, 전 교통부공무원연수원장 이기상(李起商), 전 제일은행본부장 이강호(李康鎬) 등이 있다.산성리 부성동김씨 후손 중에는 가선대부 김훈환(金勳煥), 중추원위관 김창호(金昌鎬) 부자와 그의 후손으로 육군대령으로 예편한 김건영(金建榮), 전 지곡농협장 김찬영(金澯榮) 형제와 전 육군 중령 김항선(金恒善), 고암개발주식회사 사장 김완선(金完善), 전 해동화재보험회사 상무 김홍섭(金洪燮), 전 지공농협 전무 김홍경(金洪慶) 등이 있다.
대요리 한우물 정씨 후손 중에는 금남군 정충신의 둘째 아들로 죽산도호부사를 지낸 정빙(鄭砯)이 있고 근세 인물로는 참봉 정환식(鄭煥植), 전 지곡면장 정준익(鄭俊益), 전 서산여자고등학교 교장 정환호(鄭煥虎), 전 이사관 정환민(鄭煥旻) 등 3부자와 전 시산시의원 정윤규(鄭允圭) 등이 있다.
2008년 5월에 발행된 『지곡면지』에는 지곡면 집성촌의 현황이 보다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지곡면에서 300년 이상 된 집성촌에 대해 족보와 후손들의 증언을 토대로 조사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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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환경]
지곡면의 북쪽은 망미산을 경계로 서산시 대산읍, 동쪽은 황해를 사이에 두고 당진군 대호지면과 서산시 성연면, 남쪽은 성연면·팔봉면, 서쪽은 바다를 경계로 태안군 이원면과 접한다. 지곡면은 지정학적으로 대산반도의 중간에 위치하며 넓은 바다와 산 그리고 비옥한 토지 등 다른 지역보다 자원이 풍부하고 예부터 사람들의 사회적 유출입이 적어 전통문화가 잘 보존된 지역이기도 하다. 현재에도 정충신 사당[진충사, 정충신 장군 유품 소장]을 비롯하여 부성사(富城祠) 등 유적들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