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3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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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順天竹內里古墳群 |
영어공식명칭 | Ancient Tombs in Juknae-ri, Suncheon |
영어음역 | Ancient Tombs in Juknae-ri, Suncheon |
영어공식명칭 | Ancient Tombs in Juknae-ri, Suncheon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죽내리 산 43-3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오재진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6년 - 순천 죽내리 고분군 조선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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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7년 - 순천 죽내리 고분군 조선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 완료 |
소재지 | 순천 죽내리 고분군 -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죽내리 산43-3 |
성격 | 분묘유적 |
크기(높이,지름) | 석곽묘 98㎝[잔존 최대 길이]|90㎝[너비]|96㎝[잔존 높이]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죽내리에 있는 삼국시대 분묘유적.
[위치]
순천 죽내리 고분군은 순천시 황전면 죽내리 산41 일원에 있다. 순천 죽내리 고분군은 성암산의 능선 중 나지막한 구릉의 능선부로 황전천 양안에 있는 곡간 평지와 연결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순천 죽내리 고분군은 순천-구례 간 도로 확장·포장공사로 인해 1996~1997년에 걸쳐 조선대학교박물관이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 삼국시대 분묘 7기가 확인되었다. 그 후 2018년 임도 개설과정 중 벽석이 노출된 석곽묘 1기에 대한 발굴조사와 주변 일대에 대한 시굴 조사가 나라문화연구원에 의해 이루어졌다.
[형태]
순천 죽내리 고분군 중 1996~1997년 발굴한 삼국시대 분묘 7기는 장축 방향, 바닥석의 유무, 벽석의 축조방법, 관고리와 관정의 유무 등을 기준으로 백제계[1~3호분]와 가야계[4~7호분]로 구분된다. 4~7호 석곽묘는 바닥석·관고리·관정이 없고, 등고선과 나란한 장축을 하였으며, 납작한 강돌을 입수적하여 벽석 하단부를 마련하고 2~3단은 평적(平積)하였다. 백제계 석곽은 등고선과 직교하고 바닥석을 깔고 있고, 관고리와 관정이 확인된다. 석곽의 장폭비를 보면 가야계는 대개 3:1 이상으로 세장방형인데 반하여, 백제계는 그보다 짧아 장방형을 띤다.
2018년 발굴 조사된 순천 죽내리 고분군의 석곽묘는 등고선 방향과 약간 비스듬히 직교하는 방향으로 축조되어 있다. 대부분 임도 개설로 훼손되어 1/2 정도만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생토층과 상부 퇴적층을 비스듬히 뚫어 묘광을 조성하고 있으며, 석곽은 묘광에 붙여 축조하였다. 석곽의 잔존 규모는 잔존 최대 길이 98㎝, 너비 90㎝, 잔존 높이 96㎝이다. 바닥 전면에는 15~20㎝ 크기의 천석을 깔았으며, 북서 모서리 일부만 천석을 깔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내부 출토유물은 관정 7점만이 확인되었다. 관정의 출토 상태로 보아 관의 너비는 최대 60㎝ 정도로 파악되며, 서벽 쪽으로 약간 치우치게 관을 안치시킨 것으로 판단된다. 시굴 조사 결과 8~10m 간격으로 석곽묘와 석실묘가 조성되어 있음을 확인하였고, 봉토분 2기가 새롭게 확인되었다. 봉토분은 지름 10~15m의 중소형분이다.
[출토 유물]
순천 죽내리 고분군에서 병·단지·접시·굽다리단지·뚜껑접시·잔·방추차[가락바퀴]·철탁·철겸[쇠낫]·철부[쇠도끼]·관고리·관정·철도·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대가야계 개(蓋)와 장경호[목긴항아리]는 지표 수습되었다. 순천 죽내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로 보면 6세기 전반을 중심연대로 볼 수 있다.
[현황]
순천 죽내리 고분군은 1996~1997년 조사에서는 삼국시대 분묘 7기가 확인되었다. 2018년 조사에서는 석곽묘 1기가 발굴조사 되었으며 시굴 조사에서 석실 및 석곽묘 6기가 확인되었고, 그동안 보고되지 않았던 봉토분 2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순천 죽내리 고분군을 통해 순천 성암산성 아래에 대규모 고분군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의의와 평가]
순천 죽내리 고분군은 가야계와 백제계 석곽묘가 혼재하는 고분군으로서, 가야계 석곽에서 백제계 석곽으로의 변화과정이 확인된다. 예컨대, 가야계 석곽에서 가야계 유물이 줄어들면서 백제계 유물이 증가하고 있다. 백제 산성 아래의 백제 고분군에서 가야계 토기와 묘제가 확인된 것은 백제 산성이 축조될 무렵에 가야토기와 가야묘제를 사용하던 재지세력이 있었고, 6세기 전반 이후 백제의 영역화 시점에 토착세력의 백제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