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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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廣寺浮屠庵浮屠群 |
영어공식명칭 | Stupas at Budoam Hermitage of Songgwangsa Temple |
영어음역 | Stupas at Budoam Hermitage of Songgwangsa Temple |
영어공식명칭 | Stupas at Budoam Hermitage of Songgwangsa Temple |
이칭/별칭 | 송광사 비전암 부도군,송광사 율원 부도군,송광사 부도전 부도군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신평리 12]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엄기표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 부도암에 있는 조선 후기 부도군.
[건립 경위]
조선 후기에 들어와 불교가 다시 부흥하고, 승려들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그리고 부도가 살아생전 법계에 따라 건립되는 것이 아니라 입적 이후 추모적인 성격의 조형물로 인식이 변화되면서 많은 승려의 부도가 건립되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사찰의 입구나 특정한 지역의 일정한 공간에 법맥이나 사제관계 등에 따라 부도를 건립하였다. 송광사 부도암 부도군에 건립된 부도들은 총25기로 조선 후기에 들어와 송광사를 대대적으로 중창하면서 많은 불도를 운집시킨 부휴대사(浮休大師) 선수(善修)[1543~1615]와 선수의 법맥을 잇는 제자들의 부도를 한 장소에 지속해서 건립하여 현재와 같은 무리가 형성되었다. 이곳에는 조선 후기 유행한 팔각당형, 원구형, 석종형 등 여러 유형의 부도가 건립되었다.
송광사 부도암 부도전의 부도들은 순천 송광사 일대를 중심으로 활약하다가 입적한 부휴대사의 법계를 잇는 부휴파 승려들의 부도가 단(壇)을 이루며 순서에 따라 건립되었다. 현재 현대기의 부도까지 합하여 부도 28기, 석비 5기가 건립되어 있는데, 앞부분에 배치된 일부 부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조선 후기에 건립되었다. 이 중에서 1916년 송광사 보조암지(普照庵址)에서 풍암영주탑(楓巖靈珠塔)과 묵암화상탑(黙庵和尙塔)이 이전되었고, 1918년에는 송광사 보조암지에서 벽담당탑(碧潭堂塔)과 회계당영주탑(會溪堂靈珠塔)이 이전되어 현재와 같은 송광사 부도암 부도군을 형성하게 되었다.
[위치]
송광사 부도암 부도군은 부도암 입구 좌측 편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사각형으로 담을 친 넓은 공간 안에 있다.
[형태]
송광사 부도암 부도군은 외곽에 사각형으로 담장을 두르고, 정면 입구에 문을 마련하여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송광사 부도암 부도군의 부도들은 단을 이루며 일정한 체계에 의하여 건립되었는데, 가장 위쪽 상단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 부휴대사의 제자들이 사제관계에 따라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다. 현재 송광사 부도암 부도군의 상단에는 송광사보조국사비와 송광사사적비가 건립되어 있으며, 앞쪽 한가운데에는 팔각당형 양식의 부휴대사탑이 건립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앞쪽으로 낮은 석축 단을 쌓아 사제관계에 따라 부도를 배치하였다. 이들 부도는 팔각당형, 원구형, 석종형 등 다양한 양식이 적용되어 건립되었다.
[현황]
송광사 부도암 부도군은 외곽에 담장을 돌려 구획하였으며, 부도들은 낮게 석축으로 단을 쌓아 사제관계에 따라 배치하였다. 이 중에서 4기의 부도는 송광사 보조암지에서 이전하였으며, 일부는 현대기에 건립된 부도들도 있다. 송광사 부도암 부도군은 전체적으로 잘 꾸며져 있으며, 부도와 비들의 보존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현재 송광사 부도암 부도군에는 선수(善修)[1543~1615]의 부휴대사탑(浮休大師塔)[1615년경], 벽암(碧巖) 각성(覺性)[1575~1660]의 벽암대사탑(碧巖大師塔)[1660년경], 송계대사(松溪大師) 영각(靈覺)의 송계대사 영각탑(松溪大師靈覺塔)[1650년경], 뇌정당 진령탑(雷靜堂眞靈塔)[17세기], 취미(翠微) 수초(守初)[1590~1668]의 취미탑(翠微塔)[1669년경], 유영대사(柳影大師) 원철(圓哲)의 유영탑(柳影塔)[1673년경], 백암(栢庵) 성총(性聰)[1631~1700]의 백암탑(栢菴塔)[1700년경], 휴암대사(休菴大師) 긍언(亘彦)의 휴암탑(休菴塔)[1699년경], 혜공대사(慧空大師) 상름(尙懍)의 혜공탑(慧空塔)[18세기], 무용(無用) 수연(秀演)[1651~1719]의 무용당탑(無用堂塔)[1720년경], 일주탑(一珠塔)[18세기], 벽오대사(碧梧大師) 초경(初冏)의 벽오탑(碧梧塔)[18세기], 우계대사(友溪大師) 준익(儁益)의 우계탑(友溪塔)[18세기], 영해대사(影海大師) 약탄(若坦)[1668~1754]의 영해탑(影海塔)[1754년경], 완화대사(玩華大師) 처해(處解)의 완화탑(玩華塔)[18세기], 풍암(楓巖) 세찰(世察)[1688~1758]의 풍암영주탑(楓巖靈珠塔)[1767년경], 두월대사(斗月大師) 우홍(禹洪)의 두월화상탑(斗月和尙塔)[1816년경], 묵암(默庵) 최눌(最訥)[1717~1790]의 묵암화상탑(黙庵和尙塔)[1790년경], 자암대사(慈庵大師)의 자암당 수정탑(慈庵堂守定塔)[조선 후기], 벽담대사(碧潭大師) 행인(幸仁)의 벽담당탑(碧潭堂塔)[1800년경], 제운대사(霽雲大師) 해징(海澄)의 제운당탑(霽雲堂塔)[1902년경], 환해대사(幻海大師) 법린(法璘)의 환해화상탑(幻海和尙塔)[1820년경], 회계대사(會溪大師) 휘종(輝宗)의 회계당 영주탑(會溪堂靈珠塔)[1835년경], 화운당(華雲堂) 정순(定淳)의 화운당탑(華雲堂塔)[1902년경] 등이 건립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송광사 부도암 부도군의 부도들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단을 조성하여 단마다 사제관계와 도반 관계 등을 고려하여 부도들이 오랜 세월 동안 조성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위쪽에는 선대의 부도를 세우고, 그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후대의 부도들을 건립하였다. 그래서 송광사 부도암 부도군은 소위 ‘계조탑군(繼祖塔群)’이라고 하여, 조선 후기 부도 건립의 전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