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575
한자 延日鄭氏
영어공식명칭 Yeonil Jeong Clan
영어음역 Yeonil Jeong Clan
영어공식명칭 Yeonil Jeo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지 연일정씨 입향지 - 전라남도 순천시
세거|집성지 연일정씨 세거지 -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죽평리 지도보기|황전면지도보기
묘소|세장지 곡수서원 - 전라남도 순천시 순광로 105-17[조례동 355]지도보기
성씨 시조 정극유
입향 시조 정소

[정의]

정극유를 시조로 하고 정소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세거성씨.

[연원]

연일정씨는 신라 태종 무열왕 때 간의대부를 지낸 정종은(鄭宗殷)을 시조로 한다. 정종은의 후손 정의경(鄭宜卿)이 연일현백(延日縣伯)에 봉해져서 본관을 연일로 하였다. 중간에 세보의 실전으로 원류는 같지만 소목(昭穆)을 밝힐 수 없는 두 파로 나뉘어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고려 예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인종 때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지낸 정습명(鄭襲明)[?~1151]을 시조로 하는 지주사공파(知奏事公派)와 감무(監務)를 지낸 정극유(鄭克儒)를 시조로 하는 감무공파(監務公派)이다. 순천 지역에 입향한 정소(鄭沼)[1518~1572]는 감무공파이다.

[입향 경위]

연일정씨가 순천 지역에 들어오게 된 것은 16세기 전반이었다. 서울에 세거하던 정소는 형과 함께 모재(慕齊) 김안국(金安國)[1478~1543]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 을사사화로 아버지와 형이 함께 화를 입어 유배당하자 관직에 뜻을 버리고 순천읍 청사(菁莎) 농막에 와서 은거하며 평생을 지냈다. 16세기 중반 순천 지역을 대표하는 사족으로 승평사은(昇平四隱)을 꼽는데, 승평사은 중 한 명이었다. 정소의 아들 정원명(鄭元溟)과 정상명(鄭祥溟)[1545~?] 형제는 정유재란 중 이순신을 도와 공을 세웠다. 정원명의 손자 정시관(鄭時灌)은 승평팔문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입향 이후 순천 지역 주도 세력과 교유하면서 쉽게 정착하였다. 그러나 뒤에 후손들이 광양과 보성 지역으로 이거하면서 향안에 많이 입록되지는 못하였다.

[현황]

193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된 『조선의 성씨』[『朝鮮の姓』]의 순천군 조에는 연일정씨가 세거하는 마을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961년 순천향교에서 편찬한 『순천씨족보』에는 순천시 서면 죽평리와 순천시 황전면 농소리에 세거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2015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연일정씨는 991명이 순천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유적]

전라남도 순천시 조례동정소를 배향하는 곡수서원이 있다. 곡수서원은 원래 1712년(숙종 38) 순천 지역 유림의 발의로 정소정소의 형 정자(鄭滋)[1515~1547], 정소의 지우 조대성(趙大成)[1520~1566]을 함께 배향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처음 위치는 정소가 머물렀던 청사헌 자리였고, 이름 역시 ‘청사서원’이었다. 1868년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5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면서 ‘곡수서원’으로 개칭하였다. 복원 이후에는 정소와 조대성만 배향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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