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487 |
---|---|
한자 | 姑母山城 |
영어의미역 | Gomosanseong Fortress |
이칭/별칭 | 할미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조금1리 하조금마을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희돈 |
성격 | 산성 |
---|---|
건립시기/연도 | 조선 중기 |
관련인물 | 윤열(尹悅) |
길이 | 약 500m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조금1리 하조금마을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조금1리 하조금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석축 산성.
[건립경위]
고모산성에 관한 첫 기록은 『여도비지(與圖備志)』 평해군 고성조에 ‘고모성(姑母城)’이라는 성의 이름만 확인된다. 『대동지지(大東地志)』 평해군 성지조(城池條)에도 ‘고성’이라는 성의 이름만 기록되어 있다.
이후 『강원도읍지』·『평해군지』·『울진읍지』 등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다가 『울진군지』 평해 고적조에 ‘조선시대 선조 30년(1597) 정유(丁酉)에 평해군수 겸 조방장(助防將)인 윤열(尹悅)이 축조한 석성(石城)으로 지금도 성지가 남아 있으며, 이곳은 백수산(柏樹山)으로 유명하다’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고모산성은 조선시대 정유재란(丁酉再亂)에 즈음하여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울진군 평해읍에서 서쪽으로 난 영양행 국도 88호선을 따라가면 10㎞ 떨어진 지점에 백암온천지구가 있다. 백암온천지구 초입의 제1온정교에서 남쪽의 포장된 마을길을 따라가면 약 2.5㎞ 떨어진 지점에 제2온정교가 있다. 제2온정교에서 서쪽의 양냄이마을로 들어가면 백암산성으로 들어가는 길이며, 비포장길을 4㎞ 가다 보면 온정면 조금리 하조금에 다다른다.
마을에서 서쪽으로 난 산로를 따라 1.7㎞ 정도 가면 길 끝지점에 석회석 광산이 운영되고 있다. 석회석 광산에서 남서쪽으로 40여 분을 올라가면 오른쪽으로는 폭포가 있는 금곡의 계곡이 있으며, 북서쪽으로는 멀리 해발 649.2m 고지에 있는 고모산성이 보인다.
금곡을 건너 조금 가파른 산길을 30여 분 오르다 보면 석성이 무너진 유지(遺址)가 눈앞에 나타난다. 이곳에서 정북쪽으로는 백암산성이 있고, 왼쪽으로 5° 정도의 위치에는 백암산이 한눈에 들어오며, 서쪽으로는 영양군 수비면 일대의 산악이 모두 조망된다.
[형태]
하조금에서 광산길을 거쳐 백수산으로 들어가면 성의 초입에 서쪽으로 트여 있는 서문지(西門址)가 나타난다. 서문지 아래에는 60×50㎝ 크기의 문둔테석이 지표에 노출되어 있으며, 문둔테석 상면에는 문비(門扉)의 문둔테 구멍으로 판단되는 직경 11㎝, 깊이 6㎝의 구멍이 뚫려 있다. 문비를 삽입했던 2개의 석공간(石孔間)의 거리는 165㎝이며, 양쪽 다 구멍이 뚫려 있어 2개의 문을 달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지 좌우로는 성벽에 연이어 문지를 구축했던 육축부(陸築部)로 판단되는 장방형의 적석단(積石壇)이 무너진 채로 있다. 북측의 육축부는 단축 210㎝, 장축 400㎝, 현고 180㎝이며, 남측의 육축부는 단축 330㎝, 장축 442㎝, 현고 150㎝이다.
문지에서 남쪽으로 연이어진 성벽을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살펴보면, 성벽은 내탁법(內託法)으로 축조하였고, 성 밖으로는 경사가 급해 외부의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성 안에는 폭 3~4m의 내부 회곽도(廻郭道)가 마련되어 있다. 문지에서 140m 떨어진 지점에서 성벽은 꺾여 돌아가고 있다. 꺾이는 점은 성체(城體)에서 밖으로 돌출되어 있으며, 다소 높고 평탄한 대지를 이루고 있어 망루지(望樓址)로 추정된다. 망루지에서 성 밖으로는 경사가 매우 급하다. 그 아래로는 하조금마을이 있다. 경사가 급하여 등행하기가 힘이 들긴 하나 하조금에서 광산길을 통하지 않고 곧바로 고모산성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추정 망루지에서 130m 정도 진행하면 동쪽으로 자루처럼 뻗어내린 지형이 있다. 본성의 한 줄기는 이곳에서 그대로 정상을 향해 올라가며, 또 한줄기는 자루처럼 뻗어내린 능선을 한 바퀴 감싸안고 돌아와 본성에 다시 연접하고 있다. 이는 자연 지형을 최대로 이용하여 본성의 치성(雉城) 역할을 하고 있는 외성으로 추정되며, 길게 뻗어나온 길이가 25m이며, 본성에 연접된 길이는 15m이다.
성벽은 치성에서 곧장 정상을 향해 급경사를 이루며 올라가고 있다. 산정에는 헬기 착륙장이 마련되어 있다. 헬기 착륙장을 지나면 지세는 다시 급격히 낮아진다. 서쪽으로는 급한 경사를 그대로 이용한 무성(無城) 절벽 구간으로 석축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무성 절벽이 거의 끝나는 구간에는 2~3단 정도 남아 있는 석축의 흔적이 일부 발견된다. 곧이어 이 성벽은 서문지와 다시 연결되게 되어 있다. 서문지에서 출발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바퀴 주회(周廻)한 성의 총길이는 약 500m이다.
[현황]
성 안의 서문지 주위에는 다수의 와편이 산재해 있다. 서문지 상부로 문루(門樓)를 얹었거나 성문을 지키는 간단한 초소용 건물지가 주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와편은 시대를 알 수 있는 명문와(銘文瓦)나 등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진 것이 아닌 민무늬의 종류들이기 때문에 그 제작 시기를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전의 와편들은 발견되고 있지 않아 성의 초축 연대를 추정해볼 수 있는 1597년 이후의 와류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고모산성은 성 안의 지세가 평탄한 곳이 없어 장기간 입보항쟁(入堡抗爭)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다만, 지세가 험하여 피난성(避難城)으로는 매우 적합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고모산성은 북쪽으로 직선 거리 4㎞ 지점에 있는 백암산성의 전초기지로서 모성(母城)인 백암산성의 자성(子城) 역할이 더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상에서 동쪽의 적군 동향을 관측하여 모성에 연락을 신속히 취하거나 본성과 응하여 주성인 백암산성을 공격하는 적들을 사이에서 협공할 수 있는 지세에 위치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