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1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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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海鄕校 |
영어의미역 | Pyeonghae County School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 901[평해로 82-28]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백영흠 |
성격 | 향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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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고려 후기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 901[평해로 82-28] |
소유자 | 경북향교재단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고려 후기 향교건축.
[위치]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 평해읍사무소 뒤편 산비탈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평해향교는 1357년(공민왕 6)에 저전(楮田) 반월산(半月山) 아래에 지었다가 1407년(태종 7)에 군수 김한철(金漢哲)이 송릉동(松陵洞)으로 이건하였다. 당시에는 명색이 향교였을 뿐 완전히 정비되지 못하였다. 이후 계속하여 부속 건물이 지어졌고, 풍상과 전란 등으로 말미암아 퇴락해져 중수와 보수를 계속하였다. 1470년(성종 1)에는 대성전(大成展)이, 1474년(성종 5)에는 명륜당(明倫堂)이 지어져 어느 정도 향교로서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에 향교가 병화를 입어 소진된 것을 1585년(선조 18)에 수령과 향중(鄕中)이 협찬하여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그러나 평해향교가 너무 협소하자 1611년(광해군 3)에 향중의 인사들이 감사 오윤겸(吳允謙)에게 상서하여 동·서무를 건축하고 대성전을 증수(增修)할 것을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1686년(숙종 12)에는 제기고(祭器庫)가 지어졌으며, 1732년(영조 8)에 대성전과 명륜당이 중수되었고, 1742년(영조 18)에 비로소 동·서무가 지어졌다. 1869년(고종 6)에는 동·서무와 태화루(太和樓)가 중수되었고, 1886년(고종 23) 가을에는 대성전과 명륜당이 수리되었다.
[형태]
향교의 배치는 전학후묘형으로 명륜당 앞면에 동·서재 대신 태화루가 자리하여 대성전과 동일선상에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양 측면에 풍판을 단 맞배기와집이다. 정면은 외일출목(外一出目) 이익공(二翼工)의 겹처마로 되어 있으며, 배면은 무출목(無出目) 이익공(二翼工)의 홑처마로 되어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모르타르로 마감된 3단의 기단 위에 건물을 앉히고 대지의 경사를 이용해 정면을 누(樓)같이 4척 정도 높여 마루를 두고 있다. 평면 구성은 어칸[御間]에 마루를 두었고, 양 측칸에 1칸 반 규모의 온돌방을 꾸민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오량가구의 초익공(初翼工) 건물로 살미의 형태는 앞면에만 끝을 둥글게 하여 하부를 초각한 형태이다.
동·서무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홑처마의 맞배기와집이다. 대성전과 같은 수법으로 어칸을 크게 잡아 전통칸으로 하면서 시멘트 바닥으로 마감하였다. 앞면은 외일출목(外一出目)의 초익공(初翼工)이나 배면은 무출목(無出目)이다. 살미의 형상은 대성전과 동일하다.
태화루는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2층 누각 건물로 맞배기와집이다. 막돌 기단을 쌓은 후 누각을 올렸고, 앞면에 계자난간을 돌렸으며, 오른쪽 배면에 계단을 놓아 2층으로 오르게 했다. 이익공(二翼工) 오량(五樑)의 홑처마로 1997년에 중창(重唱)한 건물이다. 옛 건물이 낡아 도괴된 것을 원래의 자리에 같은 규모로 지었다고 한다. 내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기와집이다. 어칸[御間]을 넓게 잡아 쌍여닫이 판장문을 달았고, 협칸은 문을 달지 않고 판벽으로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