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3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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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威鳳寺普光明殿釋迦圖-佛畵一括 |
영어공식명칭 | Bundle of Bogwangmyeongjeon Hall and Bulhwa Painting in Wibongsa Temple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위봉길 53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진정환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에 있는 위봉사 보광명전의 석가삼존불 뒤에 장엄된 후불도.
[개설]
석가, 약사, 아미타로 구성된 삼세불도는 조선 후기에 전국적으로 유행한 불화의 종류이다. 삼세불도는 대체로 중앙에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를, 그 좌측에 약사불의 그림을, 그 반대편에 아미타불의 그림을 배치하는 것이 통례이다. 연등불, 석가불, 미륵불 등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가 아닌, 현세의 치병과 장수, 내세에서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부처가 결합한 이유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신도들의 염원이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에 있는 삼세불 역시 석가, 약사, 아미타로 구성된 삼세불도인데, 그 조성 시기는 각기 다르다. 이는 위봉사의 중창 및 보광명전의 중건과정에서 추가로 제작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형태 및 구성]
석가모니불이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중앙의 「위봉사 보광명전 석가도」는 항마촉지인[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두 번째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모양]을 결한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그 좌우에 문수, 보현, 관음, 세지보살[아미타불의 오른쪽에 있는 보살로, 지혜의 광명으로 중생을 구제한다고 함] 등 6대 보살과 가섭, 아난 등 10대 제자, 사천왕과 용왕, 용녀, 금강역사 등이 배치되었다. 하단보다 상단으로 갈수록 인물들의 크기를 작게 그려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화기(畵記)에 따르면 「위봉사 보광명전 석가도」는 응준, 만총, 상오, 창운 등이 참여하여 1897년(광무 원년) 10월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위봉사 보광명전 약사도」는 석가도와 달리 간단한 구도인데, 중앙에 약합을 들지 않은 약사불을 배치하고, 그 아래에 해와 달을 든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배치하였다. 화기에 의하면 환봉, 준성 등의 금어에 의해 1880년 8월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위봉사 보광명전 아미타도」는 화기에서 금어는 알 수 없으나 청나라 문종의 연호인 ‘함풍’이라는 연호가 확인되어 1851년에서 1861년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위봉사 보광명전 아미타도」의 구도는 「위봉사 보광명전 아미타도」와 같은데,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배치하였다. 1880년 제작된 「위봉사 보광명전 약사도」는 「위봉사 보광명전 아미타도」를 모본으로 하여 제작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특징]
「위봉사 보광명전 석가도 및 불화 일괄」은 본존들의 모습이 근엄함과 거리가 먼 인간적인 모습을 띠는데, 이는 조선 후기 불화에서 볼 수 있는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구도 면에서 「위봉사 보광명전 석가도」의 경우 다양한 권속을 묘사하기 위해 본존보다 협시들의 크기가 작아지지만, 「위봉사 보광명전 아미타도」와 「위봉사 보광명전 약사도」는 묘사하는 인물의 수를 줄여 매우 간단한 구도를 보인다. 표현기법으로는 1800년대 후반 불화에 나타난 음영법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의의와 평가]
19세기 후반 시차를 두고 제작된 「위봉사 보광명전 석가도 및 불화 일괄」은 조선 후기 삼세불도의 변화와 전라북도 완주 지역 불교사상의 변화, 호국사찰로서의 위봉사의 중창과정을 짐작하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