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393
한자 群山鉢山里石燈
영어공식명칭 Stone Lantern in Barsan-ri, Gunsan
이칭/별칭 옥구발산리석등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진정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군산 발산리 석등 보물 제234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군산 발산리 석등 보물로 재지정
현 소재지 군산 발산리 석등 -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발산초등학교
원소재지 군산 발산리 석등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봉림사지지도보기
성격 석조미술
양식 석등
소유자 국유
관리자 군산시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봉림사지에 있었던 석등.

[건립 경위]

군산 발산리 석등은 후백제의 중요 교통로를 비보하기 위해 봉림사에 조성된 석등이다.

[위치]

군산시 대야공용버스터미널에서 번영로를 따라 발산리 방향으로 2㎞ 정도 가면 개정면사무소가 나오고 그 뒤에 발산초등학교가 위치한다. 군산 발산리 석등은 현재 시마타니 야소야[島谷八十八]가 수집한 다양한 석조물과 함께 군산 발산초등학교 내에 있다.

[형태]

군산 발산리 석등은 지대석[탑이 세워질 지면을 단단하게 다진 후에 놓는 돌]과 하대석이 돌 한 장으로 되어 있으며, 하대석에는 복판(複瓣) 8엽의 복련(伏蓮)[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연꽃무늬]이 새겨져 있다. 모를 깎은 방형의 간주석에는 운룡문(雲龍文)이 조각되어 있다. 상대석은 팔각형으로 만곡된 단판 8엽의 연판문[연꽃 모양을 형상화한 문양]이 새겨져 있고, 그 안에는 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상대석 연판이 만곡된 예는 부여 무량사 석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화사석은 간주석과 마찬가지로 사각형의 모를 깎아 타원형을 띠며, 화창과 화창 사이에는 악귀(惡鬼)를 밟고 있는 사천왕상을 조각했다. 지붕돌은 팔각으로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등의 옥개석 형태이다.

[현황]

군산 발산리 석등은 원래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에 위치한 봉림사지에 있었으나 오층석탑과 함께 일제강점기 군산 시마타니농장[島谷農場]으로 밀반출되었으며, 현재는 군산 발산초등학교가 생기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봉림사지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차례에 걸쳐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이 이뤄졌다. 1963년 1월 21일에 보물 제23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군산 발산리 석등의 특징은 첫째, 간주석과 화사석이 방형을 띠는 점이다. 통일신라 석등의 간주석은 팔각형, 고복형, 쌍사자 등 다양하지만, 화사석은 팔각형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고려시대 석등은 관촉사 석등이나 현화사 석등처럼 화사석이 방형으로 변모하게 된다. 군산 발산리 석등은 이러한 변화과정에서 과도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고려 광종 대[949~975]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관촉사 석등의 조성 시기를 고려하면, 군산 발산리 석등은 그보다 좀 더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사천왕상의 비례가 9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조성된 경상도 청도 운문사 사천왕상과 유사하다. 셋째는 간주석의 ‘운룡문’이다. 황룡사 창건 설화에 등장한 이래, 용은 불법을 수호하는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불교미술품에서 운룡문은 선림원지 부도, 흥법사 진공대사탑, 고달사 원종대사 혜진탑 등 부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역시 사리 수호의 의미를 담은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국사, 왕사의 부도에만 운룡문을 새긴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왕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의미를 담았을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넷째는 군산 발산리 석등과 무량사 석등이 유사하다는 점이다. 간주석[석등의 기둥]과 화사석[석등에서 등불을 밝히도록 만든 부분의 돌]이 부등변인 점과 상대석의 연판문이 만곡된 점은 두 석등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또한 무량사 석탑은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볼 수 있는 높은 가구식 단층기단이 있는데, 이로써 무량사 불교미술품이 전주 지역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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