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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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奇里鳳林寺址 |
영어공식명칭 | Bongrimsa Temple Site in Samgi-ri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491 |
집필자 | 조명일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5년 - 삼기리 봉림사지 긴급발굴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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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6년 - 삼기리 봉림사지 발굴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7년 - 삼기리 봉림사지 발굴조사[3차] |
소재지 | 삼기리 봉림사지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491 |
출토 유물 소장처 | 군산 발산리 석등 -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발산초등학교 내 |
출토 유물 소장처 | 군산 발산리 5층석탑 -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발산초등학교 내 |
출토 유물 소장처 | 삼존석불 -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백제대로 567 전북대학교 박물관 |
출토 유물 소장처 | 석등 하대석 및 지대석 -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백제대로 567 전북대학교 박물관 |
성격 | 절터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에 있는 후백제시대 절터.
[변천]
삼기리 봉림사지에 대해서는 지역의 고문헌, 사찰지(寺刹誌) 등 그 어떠한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없는 사원이다. ‘봉림사(鳳林寺)’라는 명칭이 구전되어 오늘에 이르고는 있지만 그 유래를 역추적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존재한다. 다만 『완주군지』에 의하면, 행정구역 폐합이 이루어지던 1914년 이전에는 삼기리 봉림사지가 위치하던 마을이 봉림리(鳳林里)였고, 부분 명으로 봉림동(鳳林洞)이라 불렸다. 봉림동은 봉림산 밑에 있고, 봉림산에는 봉림사가 있었다고 전할 뿐이다. 삼기리 봉림사지에 대한 최초의 조사는 인근에 있는 삼기초등학교 이승철 교사를 비롯한 5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향토연구자료수집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1961년 5월 18일 삼기리 봉림사지 일대를 조사하던 중 석불 2점과 석조물 2점을 발견해 전북일보에 제보했고, 전북일보에서는 세부적인 설명을 보도했다. 이후 1975년 12월 전북대학교 박물관은 전주와 완주 지역의 문화재 조사를 해 『전주·완주지역 문화재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 삼기리 봉림사지는 ∩자형 구릉을 배경으로 서편 구릉의 경사면에 삼존불, 5층 석탑, 석등이 있었다는 주민들의 증언을 확보하였다. 증언에 따르면 서편 구릉을 뒤로 해서 삼존불이 있고, 그 앞 북쪽 편에 5층 석탑이, 남쪽 편에 석등이 자리했었다고 한다. 이 석조물 가운데 석탑과 석등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시마타니[島谷]에 의해 군산[당시 옥구군 개정면 주산리]으로 이미 반출되었고, 삼존불은 각각 해체되어 산재하던 것을 삼기초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학교 정원으로 이전해서 교육자료로 활용하였다. 이후 삼기초등학교에 방치되던 불상을 1977년 5월 12일에 전북대학교 박물관 정원으로 옮겨 온전한 모습으로 복원했다.
[위치]
삼기리 봉림사지는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삼기초등학교 뒷산에 있다. 해발 550m의 봉수대산에서 서남쪽으로 갈라진 능선 말단부에 해당하는데 삼기리 봉림사지의 동쪽은 해발 300m의 야산으로 막혀 있고, 서쪽은 높지 않은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삼기리 봉림사지 1차 발굴조사는 유적의 보존 정비를 위한 긴급수습발굴조사로 2015년 8월 12일~2015년 9월 1일에 걸쳐 조사하였다. 삼기리 봉림사지에 대한 과거 조사 기록들을 바탕으로 실시된 삼기리 봉림사지 긴급발굴조사는 훼손된 지점에서 사지 관련 유구나 유물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고, 사지의 가람배치를 파악함으로써 사원의 역사성을 정립하는 기초자료를 확보했다. 조사 결과 봉림사 건물로 추정되는 건물지 4기, 기단부 2기, 집석시설 2기, 부석시설 1기, 원형 석열 2기 등이 조사되었다. 유물은 신라말 고려초~고려에 해당하는 기와, 청자 조각 등이 다수를 차지한다. 익산 저토성, 전주 동고산성이나 오목대 유적에서 출토된 기와와 유사한 양상을 보여 시기적으로 관련될 것으로 추정된다.
2차 발굴조사는 유적의 보존 정비를 위한 발굴조사로 2016년 4월 27일~2016년 7월 31일에 걸쳐 조사하였다. 후백제기로 추정되는 회랑형 건물지 및 다수의 건물지, 석등의 기단부로 추정되는 부석시설 등이 조사되었다. 특히 회랑형 건물지는 ‘ㄴ’자 형태로 확인되었으며, 방형의 적심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방형의 적심시설은 단축 15m, 장축 33m 범위에 분포하며, 중심 간 거리는 4.0~4.4m에 이른다. 현재 회랑형 건물지는 일부만 확인되었는데 건물지를 조성할 때에는 대규모의 토목공사를 통해 대지를 조성했음이 토층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후백제~고려는 물론 조선시대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기와 조각, 청자 조각, 분청사기 조각, 연질 및 경질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청자류는 11~13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기종이 출토되었는데, 12세기를 전후하는 청자가 주류를 이룬다. 특히, 청자류 중에는 중국제 자기[당말~오대 월주요 청자 추정]와 선햇무리굽 및 햇무리굽 등도 확인되고 있어 주목된다. 15세기 후반에 제작된 조선 분청사기도 다수 출토되었으며, 귀얄문[풀이나 옻 따위로 무엇을 칠할 때 쓰는 도구를 사용하여 낸 무늬] 분청사기가 많다.
3차 발굴조사는 유적의 보존 정비를 위한 발굴조사로 2017년 10월 11일~2017년 12월 24일에 걸쳐 조사하였다. 유적 전체의 토층과 건물지의 전면적 보완조사가 이루어졌다. 또한 둑 일부를 제거해 다양한 건물지의 구조와 선후 관계를 파악하고, 석등의 기단부로 추정되는 부석시설의 주변 확장조사를 통해 그 전모를 확인했으며 조사를 통해 사찰 건물지의 구조와 성격 등을 더욱 명확히 알 수 있었다.
1~3차의 발굴조사를 통해 봉림사의 가람배치를 확인하였다. 봉림사의 가람은 동사면에 한정되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지표조사[1979] 시 확인되었던 석등-삼존석불-석탑의 존재에서 석등-석탑-삼존석불 및 금당-강당체제의 봉림사 가람배치가 비로소 확인되었다. 봉림사는 후백제~고려시대에 조성되며 석등 기단부, 회랑형 건물지, 출입시설 등을 확인했고 조선시대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온 봉림사가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회랑형 건물지는 대지를 성토하고 재굴착한 후 1m 이상을 석축해 조성하는데 적심 전체 높이를 맞추어 수평면을 조성해서 건물지를 올리는 구조로, 이는 후백제의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준다. 그리고 발산리 석등[보물 제123호]으로 알려진 봉림사 석등의 위치를 확인했다. 봉림사지 석등은 문화재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석등의 정확한 출토 위치를 짐작만 할 뿐, 하대석과 지대석이 전북대학교에 따로 소장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이번 조사 결과에서는 석등지의 규모와 전북대학교에 자리하고 있는 지대석과 하대석의 크기를 비교해 본 결과 정확히 들어맞음을 확인하였다.
[현황]
현재 삼기리 봉림사지는 발굴조사 후 흙을 덮어 정비했다.
[의의와 평가]
삼기리 봉림사지는 출토유물로 볼 때, 기록으로 남겨지지는 않았지만, 후백제~조선시대에 이르는 오랜 기간 동안 명맥을 유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기리 봉림사지에서는 후백제와 고려 초기에 해당하는 수준 높은 석등, 석탑, 삼존석불이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발굴조사 성과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삼기리 봉림사지의 구조와 성격, 연대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향후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공간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삼기리 봉림사지의 구조와 성격, 편년 등에 대해 명확히 밝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