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4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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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川里金彦哲妻沃野張氏旌閭 |
영어공식명칭 | Monument Gate for Okya Jang Clan, Kim Eon-cheol's Wife, in Deokcheon-ri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구암마을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구암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개설]
김언철(金彦哲) 처 옥야(沃野) 장씨(張氏)의 아버지는 장억기(張億紀)이다. 부인의 품성은 덕이 있고 정갈하며 시집 와서는 시부모를 잘 모시고 남편을 예로써 받들었다. 1597년(선조 31) 정유재란 때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원당동에 살았다. 옥야장씨 부인은 전주성이 함락된 뒤 일본군이 쫓아와 위협하므로 아기를 업고 도망가 콩밭에 숨었다. 그러나 야수처럼 달려든 일본군이 겁탈할 위세였다. 장씨가 항거하니 아이를 빼앗아 찢어 죽였다. 장씨 부인이 항의하니 칼로 양편 어깨를 쳐 죽였다. 1599년(선조 32)에 선조가 김언철 처 옥야장씨의 정렬을 가상하게 여겼다. 관리편에 제물을 보내고, ‘의인’ 칭호와 함께 정려를 설치했다.
김언철의 본관은 수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인신(金隣臣), 할아버지는 참봉 김탁(金琢), 아버지는 김한보(金漢寶)이다. 아들은 생원 김몽상(金夢祥)[1583~?]이다. 김몽상이 전주부에 있던 정려를 구이면으로 이건했다. 김몽상의 본관은 수원, 자는 자징(子徵)이다. 아버지는 전 주부 김언철(金彦哲)이다. 김몽상은 1624년(인조 2)에 실시된 갑자식년시 생원시에 합격했다. 『천계4년갑자10월13일사마방목(天啓四年甲子十月十三日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73]]에는 김몽상의 본관이 전주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당시 거주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위치]
덕천리 김언철 처 옥야장씨 정려는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구암마을 덕천 구암길 44번지 집 입구에 있다. 전주-순창 간 27번 국도를 따라 구이면 청명초등학교를 지나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원덕천을 지나 덕천교를 건너 구암마을 가운데 골목에 덕천리 김언철 처 옥야장씨 정려각이 있다.
[변천]
선조 대에 전주부 부서면(府西面)에 정려를 세웠으나, 불이 나서 전주부 일부가 소진되면서 정려가 모두 타게 되자, 부인의 아들 생원 김몽상이 구이면 와동(瓦洞) 집 옆으로 옮겨 덕천리 김언철 처 옥야장씨 정려각을 세웠다. 그로부터 120년 뒤인 1767년(영조 43)에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다시 1948년[단기 4281]에 목조정려각을 중수했다. 2015년 4월에 목조정려각을 헐고 석조정려각으로 다시 세웠다.
[형태]
2015년 이전의 정려각은 시멘트 벽돌로 만든 담장이 있고, 그 안에 덕천리 김언철 처 옥야장씨 정려각이 있다.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이며 팔작지붕 겹처마이다. 정려각 안에 2개의 현판이 있었다. 현판의 명문은 ‘열녀선무랑전생서주부김언철처장씨지려(烈女宣務郞典牲暑主簿 金彦哲妻 張氏之閭)’이다. 이 편액의 크기는 190×14㎝이다. 다른 현판은 중건기이다. 현재의 형태는 네 개의 기둥을 세우고 석조지붕을 얹은 석조정려각 형태이다. 화강암으로 만든 문이 있고, 문을 통과하면 양쪽으로 석등이 있으며, 그 뒤에 석조정려각이 있다. 정려각의 정면에는 ‘열녀각(烈女閣)’이라 쓰여 있고, 그 안에 비석이 있다. 비석의 전면에 있는 명문은 ‘열녀선무랑전생서주부수원김공 언철처 의인옥야장씨지려(烈女宣務郞典牲暑主簿水原金公 彦哲妻 宜人沃野張氏之閭)’이다. 뒷면에는 의인장씨열행실적(宜人張氏烈行實蹟)을 기록한 비문이 있다.
[현황]
덕천리 김언철 처 옥야장씨 정려각은 개축 이후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