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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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姜氏 |
영어공식명칭 | Jinju Ga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소양면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동희 |
입향지 | 진주강씨 입향지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소양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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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진주강씨 세거지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소양면 |
묘소|세장지 | 지행당(趾行堂) - 전주시 호성동[옛 완주군 초포면] |
성씨 시조 | 강이식(姜以式) |
[정의]
강이식을 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연원]
진주강씨(晋州姜氏)는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姜以式) 장군을 시조로 모시는 성씨이다. 강이식 장군은 수나라 양제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을 때 을지문덕과 함께 대승을 거두었다. 후손인 진(縉)이 진양[진주의 옛 이름]에서 벼슬살이함에 따라 진주를 본관으로 했다.
[입향 경위]
진주강씨는 증직으로 이조참판에 제수된 강영(姜永)[1781~?]이 순조 연간에 충청도 연산군에서 완주군 운동면 산북리[현 운주면]로 이거해서 후손들이 세거했다. 아들 강기주(姜冀周)[1851~?]는 1874년(고종 11)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수직(壽職)으로 가의대부동지중추부사를 받았다. 강지영(姜志永)[1824~?]은 철종 연간에 경상도 함양군에서 완주군 운서면 서당동으로 이거해 살았다. 자(字)는 덕유(德裕)이며, 아버지는 강윤순(姜胤淳)이며, 현손은 강신호(姜信豪)이다. 강제만(姜濟萬)[1848~?]이 고종 연간에 전주에서 서면 평촌으로 들어와 살았다. 자(字)는 제팔(濟八)이며, 강제만의 14대조 강이성(姜利誠) 때 처음으로 전주 초곡(草谷)에 들어와 살았고, 13대조 강황(姜璜)은 1522년(중종 17)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정언을 지냈다. 강서린(姜瑞麟)은 김제 출신 통계(通溪) 강회중(姜淮仲)의 후예로 소양에 들어와 세거했다. 강회중은 고려 우왕 때 과거에 급제해서 보문각대제학에 이르렀고 최영과 함께 탐라[제주도]를 토벌했던 인물이다.
[현황]
진주강씨 강기환(姜琦煥)[1821~?]은 자(字)가 흥서(興瑞)로 대제학 강회중의 후손으로 효성이 지극해서 1905년(고종 42)에 종사랑(從仕郞) 중학교교관(中學校敎官)으로 증직되고 정려를 받았다. 『고산지』에 ‘효자 증종사랑 중학교교관 강기환 정려’라고 나온다. 2015년 완주군에 사는 진주강씨는 2,386명이다.
[관련 유적]
전주시 호성동[옛 완주군 초포면]에 진주강씨의 강서린을 모신 지행당(趾行堂) 사우가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전라북도 기념물 제7호이다. 학문과 도덕, 효행으로 이름 높았던 지행당 강서린을 추모하기 위해 1732년(영조 8)에 세운 것이다. 강서린의 아버지 강해우(姜海遇) 역시 학덕이 높고 효행이 지극해 전주시 효자동에 자리한 황강서원에 강해우의 위패를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