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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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阿 |
영어공식명칭 | Choi A |
이칭/별칭 | 형지(衡之),문성공(文成公),완산군(完山君)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최범호 |
출생지 | 최아 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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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단소 | 최아 묘소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 산198 |
성격 | 전주최씨 문성공파 시조 |
성별 | 남자 |
본관 | 전주(全州) |
대표 관직 | 문하시중(門下侍中)|찬성사(贊成事) |
[정의]
고려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신.
[개설]
최아(崔阿)는 전주최씨 문성공파 시조이다. 전주최씨는 크게 4계파가 있다. 『전주최씨 상고사』에 의하면 최아의 상계에 대한 논란이 많으나, 여러 고증 자료에 의해 최입평의 아들로 확인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이론은 있다.
[가계]
최아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형지(衡之)이다.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최용생으로 문과에 급제했다. 1350년(충정왕 2)에 지평으로 있으면서 경상도안렴사(慶尙道按廉使)에 임명됐으나, 권문세가들을 반대하는 글을 써서 원나라 사신의 반대로 김유겸으로 바뀌었다. 공민왕대 진주목사를 역임했다. 둘째 아들은 최용각으로 문과에 급제해서 1357년(공민왕 7)에 검교 대호군(大護軍)에 임명됐다. 셋째 아들은 최용갑으로 1320년(충숙왕 7) 9월에 이제현과 박효수가 주관한 과거에 급제했으며, 1323년(충숙왕 10) 12월에 원나라에서 안축과 함께 원나라의 제과에 응시한 바 있다. 뒤에 상서이부(尙書吏部)의 판사(判事)를 지냈다. 넷째 아들 최용봉은 충정왕 대에 중랑장(中郞將)을 지냈다. 큰딸은 문과 류지에게 출가했고, 작은딸은 찬성(贊成) 최선능에게 출가했다.
[활동 사항]
최아의 신도비에 따르면 고려 충숙왕[재위 1313~1330, 복위 1332~1339] 때 등제해서 벼슬이 문하시중에 이르러 완산군에 봉해졌다고 한다. 최아의 칭덕과 의행이 한 시대에 현달했다고 한다. 이어서 찬성(贊成) 재임 시에 상시관(上試官)이 되어 이암(李嵓) 등 37인의 인물을 선발하니 세상 사람들이 인재선발을 잘했다고 칭송되었다.
[묘소]
최아의 묘소는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 분토동(粉土洞) 주덕산(周德山) 유좌(酉坐)에 있다. 현재의 주소는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 산198이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