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6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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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州崔氏 |
영어공식명칭 | Jeonju Choi Clan |
이칭/별칭 | 완산최씨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삼례읍|봉동읍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범호 |
본관 | 전주최씨 본관 - 완주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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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전주최씨 세거지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 |신원리 |
묘소|세장지 | 전주최씨 시조 묘소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 |
묘소|세장지 | 전주최씨 시조 묘소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 |
성씨 시조 | 최순작(崔純爵)|최아(崔阿)|최군옥(崔群玉)|최균(崔均) |
[정의]
전주(全州)를 본관으로 하고 전라북도 완주군에 거주하는 세거 성씨.
[개설]
전주최씨(全州崔氏)는 전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를 달리하는 4계파가 있다. 최순작(崔純爵)을 시조로 하는 문열공파(文烈公派)와 최아(崔阿)를 시조로 하는 문성공파(文成公派), 최군옥(崔群玉)을 시조로 하는 문충공파(文忠公派), 최균(崔均)을 시조로 하는 사도공파(司徒公派)로 나뉜다. 『전주최씨연원보(全州崔氏淵源譜)』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 정종 때 문과에 급제해 숙종(肅宗) 때 병부상서(兵部尙書)와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을 지내고 완산부개국백(完山府開國伯)에 봉해진 최순작(崔純爵)을 시조(始祖)로 하는 문열공파(文烈公派)와 최순작의 7세손으로 충숙왕(忠肅王)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라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진 최아(崔阿)를 시조로 하는 문성공파(文成公派)가 있다. 또 다른 계통은 고려시대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내고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에 봉해진 최군옥(崔群玉)을 시조로 하는 문충공파(文忠公派)가 있으며, 고려 인종(仁宗) 때 문과에 급제한 후 1174년(명종 4) 동북로 도지휘사(東北路道指揮使)로 조위총(趙位寵)의 난에 순절해서 완산군(完山君)에 추봉된 최균(崔均)을 시조로 하는 사도공파(司徒公派)로 나뉜다. 『전주최씨인물사(全州崔氏人物史)』에 문성공(文成公) 최아가 고려 원종(元宗) 때 보문각대학사(寶文閣大學士)를 지낸 최정신(崔正臣)[최순작의 현손]의 3자(三子) 입평(立坪)[정당문학, 상호군]의 맏아들로 기록되어 있고 문열공(文烈公) 순작계(純爵系)와 합보(合譜)가 이루어진 것으로 전하고 있어서 문열공파와 문성공파는 같은 계통으로 보인다. 이들 계파 중에서 완주군과 전주시를 비롯한 전라도 지역에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집안은 문성공파와 문충공파이다. 문성공의 묘와 최군옥의 단묘와 그 후손 만육당 최양의 묘가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것으로 보아 완주 지역을 중심으로 세거했음을 알 수 있다.
문성공 최아의 후손으로 위봉사 창건과 관련이 있는 대호군 최용각(崔龍角)과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해 공조참의(工曹參議)와 제학(提學)을 역임했던 최담(崔霮)이 유명했다. 혼탁한 정국을 개탄해 벼슬을 버리고 전주로 낙향해서 옥류동(玉流洞) 냇가의 기암 위에다 한벽당(寒壁堂)을 짓고 양촌(陽村) 권근(權近), 만육당(晩六堂) 최양(崔養)을 비롯한 명사들과 교류하면서 학문과 풍월로 자적했다. 최담의 아들 4형제가 모두 현달했는데 맏아들로 우왕 때 문과에 급제했던 최광지(崔匡之)는 조선 태종(太宗) 때 집현전 제학(集賢殿提學)을 역임했으며, 아우 최직지(崔直之)는 나주판관(羅州判官)과 순창도사(淳昌都事)를, 셋째 최득지(崔得之)는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해 막내 최덕지(崔德之)와 함께 가문을 중흥시켰다. 1405년(태종 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했던 연촌(烟村) 최덕지는 사관(史官)과 교서관정자(校書館正字), 김제군사(金堤郡事) 등을 거쳐 남원부사(南原府使)로 나갔다가 사임하고 영암 영보촌(永保村)에서 학문연구와 제자 양성에 진력했다.
최군옥의 후손으로 맏아들 최송년(崔松年)이 고려 의종(毅宗) 때 문과에 장원급제해 중의대부(中議大夫)로 밀직사사(密直司使)를 역임했고 차남 최구년(崔龜年)은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거쳐 문하찬성(門下贊成)을 역임한 후 완성부원군(完成府院君)에 봉작(封爵)되어 가문을 일으켰다. 현손인 최선능(崔善能)은 추충보절공신(推忠補節功臣)으로 삼중대광 문하찬성사(三重大匡門下贊成事)에 올라 상산부원군(商山府院君)에 봉작되었다. 최선능의 둘째 아들로 우왕 때 해도만호(海島萬戶)를 지낸 최칠석(崔七夕)은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 겸 원수(元帥)로 대마도 정벌에 공을 세워 사명(賜名)을 받았으며 조선이 개국 된 후 경기우도수군절도사(京畿右道水軍節度使)를 역임했다. 최칠석의 맏아들인 최양은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생질로 우왕(禑王) 때 문과에 급제해 이부상서(吏部尙書)와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했으나 고려가 망하자 전주 대승동 봉강리(大勝洞 鳳崗里)에 은거하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켰으며 태종(太宗)이 친구의 예로 전답(田畓)을 주었으나 끝내 받지 않았고 청렴강직한 성품으로 매서운 절개를 굽히지 않아서 두문동 72현에 꼽혔다.
[연원]
전주최씨는 4개의 계파가 있는데, 서로 연원과 조상이 다르다. 최순작(崔純爵)을 시조로 하는 문열공파(文烈公派)는 전주의 토착 성씨이고, 최아(崔阿)를 시조로 하는 문성공파(文成公派)는 최순작을 시조로 한 문열공파에서 갈라져 나왔다. 최균(崔均)을 시조로 사도공파(司徒公派)는 경주최씨(慶州崔氏) 시조 최치원의 후손이고, 최군옥(崔群玉)을 시조로 하는 문충공파(文忠公派)는 이들과 혈통을 달리하는 토착 성씨로 알려져 있다.
[입향 경위]
전주최씨 문열공파 시조 최순작이 완산부개국백(完山府開國伯)에 봉해지면서 전주[완주]를 본관으로 하고 있어서 이들을 완산최씨라고도 한다. 문성공 최아도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지면서 전주를 본관으로 하고 있다. 문충공파 최군옥도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에 봉해지면서 전주[완주]를 본관으로 하고 있는데, 모두 토착 성씨로 알려져 있다. 사도공파 최균은 경주최씨에서 분파되어 와서 완산군에 봉해지면서 전주와 관련을 맺고 있다.
[현황]
완주와 전주를 비롯한 전라도 지역에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집안은 최아의 문성공파와 최군옥의 문충공파이다. 문성공 최아의 묘와 그 후손의 묘가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에 있으며, 최군옥의 단묘와 그 후손 만육당 최양의 묘가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을 중심으로 세거했음을 알 수 있다. 전주최씨는 경주최씨와는 달리 본관지가 있는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에 많이 살고 있으며, 충청도에도 많이 거주한다. 경상도에는 상대적으로 보기 힘든 성씨지만, 집성촌이 있는 대구광역시 달성군과 경상남도 고성군에도 어느 정도 거주하고 있다. 인구수는 경주최씨 다음으로 많으며 2015년 기준으로 약 45만여 명으로, 97만여 명의 경주최씨보다는 적으나 그래도 본관 순위 20위에 있을 정도로 인구 규모가 많은 편이다.
[관련 유적]
전주최씨 문성공 최아의 묘가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에 있고, 최아의 아들 최용각의 묘가 완주군 동상면에 있으며, 문충공 최군옥의 단묘와 그 후손인 만육당 최양의 묘가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