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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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1872年地方地圖靈巖郡梨津鎭地圖 |
이칭/별칭 | 영암 지방 이진진 지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탁현진 |
[정의]
1872년에 제작된 『1872년 지방 지도』에 수록되어 있는 영암군 이진진의 지도.
[개설]
조선 후기 흥선 대원군은 집권과 더불어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관제 개정, 군제의 개편, 군사 시설의 확충과 경비의 강화, 군기(軍器)의 정비와 실험이 이어졌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의 실정 파악이 필요하였고, 이의 일환으로 1871년 전국적인 읍지 편찬과 1872년 전국적인 차원의 지도 제작이 이루어졌다.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지도가 제작되었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그려지지는 못하였으나, 이전의 지도와는 달리 풍부한 정보들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1872년 지방 지도』는 총 459매이다. 이진진(梨津鎭)[현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 일대]은 영암의 월경지(越境地)이다. 1597년 진을 설치하였다가 1627년에 수군 만호진으로 승격되었다.
[형태 및 구성]
필사 채색본의 낱장으로, 가로 35㎝, 세로 25㎝이다. 전면 상단에는 ‘전라우도 영암군 이진진 지도(全羅右道靈巖郡梨津鎭地圖)’라고 쓰여 있다.
[특징]
칸에는 각각 동서남북의 방위가 표시되어 있으며, 칸 안으로는 이진진이 상세하게 그러져 있다.
성은 동문(東門)·남문(南門)·북문(北門) 등 3개의 문이 있으며, 객사(客舍)·군고(軍庫)·군량고(軍糧庫)·내아(內衙)·사령소(使令所)·아사(衙舍)·이청(吏廳)·장청(將廳)이 그러져 있다. 성 밖으로는 동문 앞에 선창(船廠)과 함선이 그러져 있으며, 남문을 따라서 사창(社倉)이 놓여 있다. 또, 구도(鳩島)가 이진진의 둔토(屯土)로 표시되어 있으며, 영암 남창(靈巖南倉)과 영암 봉수(靈巖烽燧)가 그려져 있다.
이진진 주위로는 달량진(達梁鎭)·어란진(於蘭鎭)이 표시되어 있으며, 길을 따라 강진(康津)과 해남(海南)이 나타나며, 이진진 앞에 있는 구도·노아도(露兒島)·달도(達島)·백일도(白日島)·보길도(甫吉島)·소안도(所安島)·완도(完島)·화도(花島)·횡간도(橫看島)·흑일도(黑日島)와 제주(濟州)가 표시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진진은 삼남대로(三南大路)의 끝 지점으로, 제주로 가는 배가 떠나던 의미 깊은 곳이다. 이러한 이진진의 상세한 모습과 뱃길뿐만 아니라 이진진에서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과거 길의 위치 또한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