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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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峰山城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청용리 동산 마을 |
시대 | 고대/고대 |
집필자 | 고용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6년 - 마봉산성 터, 목포 대학교 박물관의 지표 조사 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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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마봉산성 터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청용리 동산 마을 |
성격 | 산성 터 |
지정 면적 | 300m[둘레]|3m[너비]|2.5~3m[높이]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청용리 동산 마을에 있는 산성 터.
[개설]
금정면(金井面)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현(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이다. 백제 때 아로곡현(阿老谷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8년(경덕왕 17)에 야로현(野老縣)으로 이름을 바뀌면서 반남군(潘南郡)에 속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나주목(羅州牧)에 편입된 이래 조선 시대까지 계속 나주목 소속으로 남아 있었다가, 조선 후기에 금마면(金磨面)과 원정면(元井面)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에 두 개의 면이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 금마면과 원정면이 금정면으로 통합되어, 2013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변천]
마봉산성(馬峰山城)에 대한 문헌 기록과 일제 강점기까지의 조사 기록은 전혀 찾아지지 않는다. 영암군 금정면 지역에는 북쪽의 세류리와 나주시 봉황면 덕곡리의 경계 상에 위치한 궁성산성(弓城山城)이 있고, 그보다 동남쪽으로 3.5㎞ 떨어진 마봉산성이 장흥군 유치면과 나주시 봉황면을 잇는 교통로의 남쪽에 분포하고 있다. 궁성산성은 돌로 쌓은 석성이며, 마봉산성은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축조 재료뿐만 아니라 규모 면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위치]
마봉산성은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청용리 동산 마을 앞 1㎞ 지점의 마봉(馬峰) 정상부[해발 405.6m]에 위치한 평면 둥근 꼴[圓形]의 토성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마봉산성은 1986년에 목포 대학교 박물관의 지표 조사 때 존재가 확인되었고, 1999년에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를 작성할 때 다시 확인되었다. 마봉산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고,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 및 배경은 알 수 없다.
[현황]
마봉산성은 성벽 둘레 300m, 너비 3m, 높이 2.5~3m로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다. 토성 바깥쪽에는 거의 메워진 상태이나 해자(垓字)[성 주위에 둘러 판 도랑]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성문지(城門址)는 서문과 북문 2개소를 두었다. 문지의 규모는 너비 3m, 측벽(側壁) 높이 3m로서 판축(版築) 기법[흙을 쌓아 성벽을 만드는 방법]으로 축조한 성벽과는 달리 문지의 측벽은 25~30cm 내외의 할석재(割石材)를 이용하여 설치하였다. 또한 서문지와 일직선 상의 성내(城內) 중앙 부분에 30×20m 규모의 건물지(建物址) 기단이 무너진 채로 남아 있다. 주로 성문지 주변에서 기와 조각이 수습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마봉산성은 북서쪽에 있는 궁성산성과 함께 장흥군 북부의 유치면과 나주시 남부의 봉황면 덕곡리를 잇는 교통로의 남쪽에 위치한 산성으로, 축조 목적 또한 이들 교통로를 감시·통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대 산성으로는 드물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토성으로 영암군에 분포하고 있는 토성 가운데 영암읍 활성산성(活城山城)과는 규모에서 차이를 보일 뿐, 축조 기법과 양상이 동일하다는 점에서 상호 비교되며 자료로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