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8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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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原州李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집필자 | 이성운 |
[정의]
이신우(李申佑)를 시조로 하고 해남에 정착한 이영화의 후손들이 전라남도 영암군에 분거하여 기반을 마련한 세거 성씨.
[개설]
원주 이씨(原州李氏)는 조선 시대 해남 지역의 유력한 세거 사족으로, 1445년 이영화의 해남 입향으로 해남 인근 지역에서 활발한 향촌 활동을 하였다. 다수의 인물이 중앙 관료로 진출하였고, 영암 옥천면에 살았던 옥봉 백광훈의 아들 백흥남을 사위로 맞이하는 등 해남과 강진, 영암 지역의 사족들과 혼인 관계를 통해서 가계의 결속과 사회적 위상이 강화되었다.
[연원]
원주 이씨 시조 이신우(李申佑)는 신라 때 양산 촌장을 지낸 표암공 이알평(李謁平)의 원손이며, 고려 문종 때 병부상서를 지내고 경흥군(慶興君)에 봉해졌다. 이에 후손들이 이신우를 시조로 받들고 경주 이씨에서 분적하여 본관을 원주로 삼게 되면서 원주 이씨가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다. 원주 이씨는 크게 판도공파(版圖公派), 월성군파(月城君派) 대장군공파(大將軍公派), 시랑공파(侍郞公派)[뒤에 경원군공파와 강릉공파로 분파됨] 네 계통으로 세계를 잇고 있다.
[입향 경위]
경기도 광주에 세거하다가 1445년 해남군 마산면 산막으로 내려온 것은 이신우의 15세손 이영화였다. 이영화는 단종 때 강릉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로 나갔으나, 수양 대군이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개탄하여 벼슬을 버린 후 홀로 해남 마포 오호강변 무진산 아래[현 해남군 마산면 산막리]로 입향하여 강릉공파의 파조가 되었다. 후손들은 이영화의 뜻을 이어받아, 임진왜란·병자호란 때 9명의 충신이 배출되었으며 3대에 걸쳐 효자가 나왔다. 이영화의 묘역에는 구충삼효(九忠三孝)의 사당과 정문이 세워져 충절 전통 가문인 원주 이씨를 더욱 빛내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장(李樟), 이남(李楠), 이원해(李元海), 이홍신(李弘信), 이지훈(李之訓), 이계정(李繼鄭) 등을 들 수 있다.
이영화의 후손들이 해남 인근에 분거 정착하게 되면서 영암에 원주 이씨가 정착하게 되었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영암 지역에는 87가구 245명이 살고 있다.
[관련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