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874 |
---|---|
한자 | 驪興閔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
집필자 | 박선미 |
입향 시기/일시 | 1460년 - 여흥 민씨 민문 영암 입향 |
---|---|
본관 | 여흥 - 경기도 여주시 |
입향지 | 영보촌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
세거|집성지 | 토동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
세거|집성지 | 원갈곡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
성씨 시조 | 민칭도 |
입향 시조 | 민미 |
[정의]
민칭도를 시조로 하고 민미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개설]
여흥 민씨는 전라남도 영암군에 세거하는 성씨 중의 하나로 현 거주지인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는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이전에 나주군 금마면 지역에 속했다. 입향조는 거창 신씨(居昌慎氏) 영암 입향조 신후경(愼後庚)의 사위 민미(閔敉)이다.
[연원]
여흥은 경기도 여주시의 옛 지명이다. 시조 민칭도(閔稱道)는 공자(孔子)의 10제자 중 한 사람인 민자건(閔子騫)의 후손으로, 고려 중엽에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여 여흥에 정착하였다.
[입향 경위]
민미는 경기도 김포에 살았는데, 1456년(세조 2)에 세조가 즉위하자 아버지인 민준원의 뜻에 따라 처향인 영암 영보촌[현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으로 이주하였다. 부인은 거창 신씨 영암 입향조인 신후경의 딸이다. 이후 민미의 후손들이 지금의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토동으로 이주하였다.
[현황]
여흥 민씨는 현재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를 중심으로 43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신북면 백학동 마을에 5가구와 금정면에 15~20가구 등 영암 지역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관련 유적]
영암 지역 여흥 민씨 관련 유적으로는 신북면 갈곡리에 민재식 효자비(閔宰植孝子碑)가 있다. 민재식은 효성이 지극했던 사람으로, 지역 유림들이 이를 기리기 위해 1868년(고종 5)에 효자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