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8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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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西鳩林里-同鳩林里昌寧曺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
집필자 | 정윤섭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와 동구림리에 있는 창녕 조씨 집성촌.
[개설]
서구림리와 동구림리의 창녕 조씨(昌寧曺氏)는 부제학 충정공 조상치(曺尙治)의 6세손 남은(南隱) 처사 조세풍을 입향조로 하는 부제학공파 후손들이다. 7세손 조기서(曺麒瑞)[1556~1591]는 영암군 서호면 일대의 유력 성씨인 선산 임씨 임혼(林渾)의 사위가 되었고, 1589년(선조 22) 기축옥사 후 영암으로 낙향하여 살았다. 조기서의 둘째 아들 조행립은 대동계를 중수하는 등 창녕 조씨가 구림 마을 정착하는 데 기여하였다.
[명칭 유래]
구림은 동구림리, 서구림리, 도갑리 일대 마을을 일컫는 것으로 도선이 사생아로 태어나 버림받았을 때 비둘기가 품어서 살려 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영암군 서종면(西終面)의 고산리(高山里)·동계리(東溪里)·학암리(鶴岩里)·쌍와리(雙蛙里)·신근정리(新根亭里)를 병합하여 동구림리를, 율정리(栗亭里)·서호정리(西湖亭里)·남송정리(南松亭里)·북송정리(北松亭里)·국사암리(國師岩里)와 서시면(西始面)의 신흥리(新興里)를 병합하여 서구림리를 개설하였다.
[형성 및 변천]
처음 영암으로 들어온 창녕 조씨 입향조인 조세풍은 본래 경상도에서 살았으나 1580년(선조 13)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 터를 잡고 학문 연마에 심혈을 기울였다. 조기서는 1589년 기축옥사 후 벼슬을 버리고 영암으로 낙향하여 지냈다.
조기서의 둘째 아들 조행립은 임진왜란 때 외가인 구림으로 피난하였다. 조행립은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으며 사헌부 감찰, 태인 현감, 평시서령(平市署令), 익산 군수, 온양 군수, 군기시 첨정 등의 관직을 거쳤다. 사직한 후에는 다시 구림으로 돌아와 구림 대동계를 중수하였다. 당시 구림의 선산 임씨(善山林氏), 함양 박씨(咸陽朴氏), 낭주 최씨(朗州崔氏)와 함께 구림 대동계를 중수하는 등 향론을 이끌어갔던 인물 중 한명으로 서구림리의 서호사(西湖祠)에 제향되었다.
[자연 환경]
구림 마을은 모정리, 성양리와 인접해 있으며, 마을 한가운데로 국도가 통과한다. 남쪽으로 남도(南道)의 명산인 월출산을 배경으로 하여 자리 잡고 있어, 주변 경관이 아름다우며 주로 농업을 위주로 하고 있다.
[현황]
창녕 조씨는 2012년 현재 군서면 동구림리에 32가구, 서구림리에 24가구가 살고 있다. 창녕 조씨는 영암군 영암읍을 비롯하여, 군서면, 시종면, 미암면 등지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