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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용리 밀양 김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906
한자 靑龍里密陽金氏集姓村
이칭/별칭 노동(蘆洞) 마을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
집필자 박선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628년 - 청용리 밀양 김씨 집성촌 입향조 김홍발 입향
사당 노동사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 717지도보기
성격 동성 마을
면적 4,820,859㎡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에 있는 밀양 김씨 집성촌.

[명칭 유래]

밀양 김씨 집성촌인 청용리 노동(蘆洞) 마을은 갈대가 많다고 해서 청용리 입향조인 김홍발(金弘發)[1582~1643]이 붙인 이름이다. 그 전에는 마을을 감싼 은적산에 위치한 옥룡암이 있기 때문에 옥룡동(玉龍洞)으로 불렸고, 지형이 바짓가랑이를 연상하게 해서 윗 가랫골이라고도 했다.

[형성 및 변천]

16세기 초에 김윤신(金潤身)[1848~?]이 전라도 강진군에서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화소에 정착했다. 화소김해 김씨의 집성 마을이 있기 때문에, 족적 기반의 확대 과정에서 김윤신의 후손인 김홍발이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서 1628년에 은적산 아래에 있는 노동으로 옮겼다. 김홍발은 은적산록에 있는 폐사된 옥룡암의 토지를 구입하였고, 그 토지를 중심으로 밀양 김씨 집성 마을을 형성하였다.

김홍발이 노동으로 이전하기 전, 1606년에 김윤신의 증손자이며 김홍발의 숙부인 김곽(金钁)[1574~1646]이 인근의 송정(松亭)[현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송정 마을]으로 분거(分居)하였다.

[자연환경]

노동 마을은 상은적산의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로 주위에 갈대밭이 있다.

[현황]

1980년대까지 노동 마을에는 밀양 김씨 30가구가 거주했지만, 지금은 대다수가 인근 마을이나 도시로 이주해서 현재 집성 마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상황이다. 노동 마을에는 임진왜란이괄의 난 때 활동했던 김견(金堅)김경발(金景發) 부자, 그리고 19세기에 문과에 합격해서 개성 경력을 역임했던 김종환(金宗煥)을 배향한 노동사(蘆洞祠)노동사 건립에 힘썼던 김상익, 김병규(金炳圭)를 배향한 은산사(隱山祠)가 있다. 그리고 두 사우(祠宇) 뒤에는 밀양 김씨 문중 선산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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