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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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盈德槐市-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재영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전통 테마 마을.
[개설]
영덕 괴시마을은 고려 말 대학자 목은 이색이 태어난 곳이자 영양남씨 집성촌으로, 특히 조선 후기 영남 사대부 마을의 옛 모습을 간직한 전통 마을이다. 200여 년 된 30여 호의 고택이 남아 있으며, 2021년 6월 21일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명칭 유래]
괴시리(槐市里)는 1·2·3리로 괴시1리는 괴시·호지마·호지촌·입천동·입천곡 등 여러 지명으로 불렸다. 고려 말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이 중국에 다녀온 후 구양수(歐陽脩)[중국 송나라의 정치가 겸 문인]의 고향인 괴시마을이 자신이 태어난 곳과 비슷하다고 하여 마을명을 ‘괴시’라 하였다고도 전한다. 마을 앞 호지(濠池)라는 못이 있어 붙여진 지명이라는 설도 있다. 또 마을 북편에 있는 골짜기에 호지가 있었다고 해서 호지골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마을 남쪽에 흐르는 물이 이십천(二十川)인데, 스물 ‘입(卄)’ 자를 써서 입천동·입천곡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괴시2리는 관어대·어대동·어대리 등으로 불렀는데, 목은 이색이 해구(海口)에서 바라보이는 우뚝 솟은 산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니 송천과 동해의 평화로운 모습이 인상적이라 하여 ‘관어대(觀魚臺)’라고 불렸다고 전한다. 괴시3리는 향교가 있는 마을로 향굣골·교촌·교동이라고 하였다.
[형성 및 변천]
괴시리는 고려 말 함창김씨(咸昌金氏)가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하며, 이때 목은 이색이 괴시리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괴시1리는 16세기 중반 영해신씨(寧海申氏)와 수안김씨(遂安金氏)가 들어왔으며, 1630년경 영양남씨(英陽南氏)가 다시금 마을을 개척하고 다른 성씨는 마을을 떠나면서 영양남씨가 400년 넘게 세거하는 곳이 되었다. 괴시2리는 16세기 초 안동권씨(安東權氏)가 마을을 개척하고 이후 집성촌을 이루었다. 괴시3리는 파평윤씨(坡平尹氏)가 개척하였다고 전하며, 마을에서는 ‘윤씨 터전에 박씨 골목’이라는 말이 전해져 오는데 영해박씨(寧海朴氏)도 후에 마을로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각각 영해부 읍내면 괴시동과 관어대촌, 교동이라 불렸으며, 1914년 세 마을을 합하여 영덕군 영해면 괴시동이 되었다가 1988년 영해면 괴시리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른다.
[자연환경]
괴시리의 동쪽은 상대산과 등급봉, 망일봉, 황성개비산 등 높이 200m 이하의 산맥이 동해의 거친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송천이 마을 북쪽의 일부로 흐르며, 송천의 충적평야가 인근의 영해면 연평리와 지품면 송천리에 펼쳐져 있다. 마을의 서쪽과 남쪽이 동해안의 3대 평야인 영해평야로, 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환경이다.
[현황]
영덕 괴시마을은 조선 후기 영남 지역 사대부들의 주택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영양남씨괴시파종택, 영덕 괴시동 대남댁, 영덕 괴시동 물소와고택, 영덕 괴시동 해촌고택, 대은종택, 영덕 괴시리 내앞댁, 영덕번호댁, 영해입천정, 영해주곡댁, 물소와서당, 영해경주댁, 영해구계댁, 괴시리괴정, 영덕괴시리영감댁, 영덕괴시리사곡댁, 영덕괴시리영은고택, 영덕괴시리스므나골재사, 영덕만송당, 영덕백회재고택 등 고건축물과 함께 전통문화와 예절이 전승되는 곳이다. 영덕 괴시마을은 2021년 6월 21일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전통 혼례 체험을 비롯하여 한옥 체험, 문화관광 해설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매년 가을에는 '호지말 잔치한마당'이 개최되어 전통문화 체험, 영덕의 전통예술 공연 등이 펼쳐지며, 민속놀이, 전통 음식 체험 등도 경험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격년으로 목은문화제가 개최되어 각종 전시회와 백일장, 전통놀이 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