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시리 영양 남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568
한자 槐市里英陽南氏集姓村
영어공식명칭 Single-Clan Village of Yeongyang-Nam Clan in Goesi-ri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괴시1리 괴시마을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가구수 37가구[2004년 기준]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영양 남씨 집성촌.

[개설]

영양남씨는 경상북도 영양군을 관향으로 하고, 남민을 시조로 한 성씨이다. 괴시1리 괴시마을의 영양남씨는 1630년대 남벌(南橃)[1576~1636]이 두 아들 남두건(南斗建)[1604~1651], 남두원(南斗遠)[1610~1674]과 함께 입촌한 이래 차남 남두원의 자손들이 계속 마을에 세거하면서 영양남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마을입지]

영해면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약 800m 지점에 있는 전통마을이다. 마을 뒤에는 망월봉의 산줄기가 '입(入)' 자 형국으로 벋어 있으며, 마을 앞은 넓은 영해평야가 펼쳐져 있다. 경상북도 민속자료와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고가옥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명칭 유래]

괴시 또는 호지말이라 부른다. 괴시(槐市)라는 이름은 고려 말에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자기 고향 마을이 구양수(歐陽修)의 고향인 괴시(槐市)와 흡사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 전해진다, 호지(壕池)는 마을 앞에 여러 개의 못이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마을 북쪽 골짜기에 큰 못이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고려 말에 함창김씨가 입주하였고 이때 외손인 이색괴시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조선시대 명종 연간[1545~1567]에 영해신씨와 수안김씨가 들어왔고, 1630년경 영양남씨가 입주하여 4성이 함께 거주하였으나, 3성은 점차 마을을 떠나고 영양남씨만 세거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영양남씨괴시마을에 처음 입촌한 인물은 영양남씨 영덕군 입향조인 남수의 7세손 남벌과 두 아들 남두건, 남두원이다. 장남 남두건의 자손들은 수가 많지 않고, 마을에 거주하는 영양남씨는 대부분 차남 남두원의 자손들이다. 남두원의 장남 남붕익(南鵬翼)[1641~1687]은 문과에 급제하고 영산현감, 예조좌랑을 역임하였다.

[현황]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1935년에 펴낸 『조선의 취락(후편)』에 의하면 1930년에 괴시마을에 거주하는 139가구 중 영양남씨가 72가구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시화 과정에서 영양남씨가 많이 마을을 떠나고 읍내에 인접한 마을 주변부에 외지인의 이주가 증가하여 1999년에는 158가구 중 영양남씨는 61가구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2004년에는 총 126가구 중 영양남씨는 37가구에 불과하였다. 영양남씨 이외의 거주자들은 일부 토착 주민들도 포함되어 있으나 대부분은 외지 유입인구였다. 영양남씨 괴시파 종택을 비롯한 고택과 정자 등 14점이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2021에 마을 전체를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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