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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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及伐山郡 |
영어공식명칭 | Geupbeolsan-g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방용철 |
개정 시기/일시 | 757년 - 급벌산군에서 급산군으로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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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 지역 | 급벌산군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
[정의]
삼국시대부터 757년까지 영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개설]
급벌산군(及伐山郡)은 삼국시대부터 757년(경덕왕 16) 급산군(岌山郡)으로 명칭이 변경되기 전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일대에 있었던 행정구역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급벌산군은 중앙집권적 고대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효율적인 지방 통치를 위해 설치된 행정구역으로 고구려의 영역이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5 지리지 삭주조에 급벌산군에 대해 “급산군은 본래 고구려의 급벌산군이다. 경덕왕이 개명하였는데, 지금의 흥주(興州)이다. 영현은 하나인데, 인풍현(隣豊縣)은 본래 고구려의 이벌지현(伊伐支縣)이다. 경덕왕이 개명하였는데, 지금은 잘 알 수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삼국사기』 권37 지리지 고구려조에는 본래 고구려의 우수주(牛首州)에 속하였던 지명 가운데 급벌산군이 보인다. 한편, 『삼국사기』 권32 제사지 소사조에 통일신라시대에 나라에서 제사 지낸 곳을 나열하면서 죽지(竹旨)[지금의 죽령]는 급벌산군에 속한다고 하였다.
[내용]
영주 지역은 일찍부터 고구려의 강한 영향력 아래 정치·사회·문화적 성장을 거듭하였다. 이와 관련해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에는 4세기 고구려 군사가 경상남도 일대까지 진출했다는 기사가 보이고,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454년(장수왕 42) 장수왕은 군사를 보내 신라의 북쪽 변경을 공략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5세기 무렵에 영주 지역이 고구려의 지배력 아래 들어갔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고구려가 영주 지역에 지방관을 파견하고, 군(郡)을 설치하는 등 직접 통치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삼국사기』 권37 지리지 고구려조에 따르면, 급벌산군은 본래 고구려의 우수주에 속한 군현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급벌산군에 영현으로 보이는 이벌지현[지금의 영주시 부석면 일대로 추정] 역시 고구려의 옛 지명으로 전하고 있는 만큼, 역사적 연고를 무시할 수는 없다. 고구려가 지방관을 파견하고 직접 지배하지 않았더라도 지방의 유력자를 통해 지배력을 행사하는 간접 지배했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고구려의 옛 지명인 ‘급벌산군’은 통일신라시대에도 그대로 사용되었으며, 757년 전국적인 지명 개정이 이루어지는 경덕왕 대에 급산군으로 바뀌었다.
『삼국사기』 권32 제사지에는 통일신라시대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했던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 가운데 지금은 죽령인 죽지에서 소사를 시행하였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일찍부터 영남지방과 기호지방을 연결하는 핵심 요충지였던 죽령과 급벌산군을 국가적으로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변천]
757년 급벌산군은 급산군으로 개칭되었으며, 고려시대에 흥주로 고쳐졌다. 조선시대에는 순흥도호부가 설치되었다.
[의의와 평가]
급벌산군은 중앙집권적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진행된 고대 지방 통치의 일면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