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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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榮州天雲亭 |
영어공식명칭 | Cheonunjeong, Yeongju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이산로 651-33[석포리 744-2]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태환 |
건립 시기/일시 | 1588년 - 영주 천운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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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752년 - 영주 천운정 이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52년 - 영주 천운정 중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9년 10월 12일 - 영주 천운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57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주 천운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영주 천운정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이산로 651-33[석포리 744-2] |
원소재지 | 영주 천운정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 |
성격 | 정자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김종환 |
관리자 | 김종환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있는 1588년 세워진 정자.
[개설]
영주 천운정(榮州天雲亭)은 김륵(金玏)[1540~1616]이 건립하였다. 김륵의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柏巖), 시호는 민절(敏節)이다. 이황(李滉)[1501~1570]의 문인으로, 1576년(선조 9) 문과에 급제한 뒤 영월군수·경상우도관찰사·충청도관찰사·안동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크게 활약하여 전란을 평정하는데 이바지한 공헌으로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 김륵은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구산서원(龜山書院)에 제향되었다. 김륵의 저서에는 『백암집(栢巖集)』이 있다.
[위치]
이산면행정복지센터 정문에서 이산로 남쪽 방면으로 4.6㎞ 이동하면 ‘천운정 입구’ 표지석이 나온다. ‘천운정 입구’ 표지석을 따라 약 73m 직진하면 정면에 영주 천운정이 있고 뒤로는 와우산이 있다.
[변천]
영주 천운정은 김륵이 1588년(선조 21) 건립한 정자이다. 김륵은 영주 시내 구학정(龜鶴亭)에 거처하고 있었는데, 그곳이 번잡하다 하여 번계에 천운정을 짓고 만년을 보냈다. 남송대 성리학자인 주자가 지은 「관서유감(觀書有感)」이란 시의 제2구인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함께 배회하네[天光雲影共徘徊]”란 구절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천운정 건립 후 퇴락하여 무너진 것을 1752년(영조 28)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중건하고 그 앞에 연못을 조성하였다.
[형태]
영주 천운정은 학문과 휴양을 위한 정자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다. 평면은 2통간, 온돌방과 마루 1칸을 연이어 놓았다. 전면과 오른쪽에 계자각 헌함을 돌려 마치 누마루처럼 꾸몄다. 상부가구는 간략한 3량가이고 대들보 위에 첨차와 소로를 끼운 제형 판대공으로 마룻대를 받았다. 마루 상부에는 마룻대를 마루 복판까지 빼내 끝단에 짧은 받침목을 달동자로 결구시키고 여기에 추녀와 서까래를 결구시켰다. 천운정 앞에는 연못이 있어 매년 연꽃이 만발하게 피어난다. 정자의 오른쪽에는 김륵의 둘째 아들 번계 김지선(金止善)[1573~1622]이 건립 한 살림집인 양진재(養眞齋)가 자리 잡고 있다.
[현황]
영주 천운정은 2009년 10월 12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57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석봉(石峯) 한호(韓濩)[1543~1605]가 쓴 「천운정(天雲亭)」 편액과 「동포서당(東浦書堂)」, 동래(東萊) 정언충(鄭彦忠)의 「중건천운정기」 현판이 남아 있다. 주변에 예안김씨(禮安金氏) 가문의 문화재인 영주 석포리 야일당이 있다. 한편, 영주 천운정은 영주 종가음식 상품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영주 천운정은 김륵이 만년을 보낸 곳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의 은둔과 자연 회귀적 삶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