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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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聖穴寺 |
영어공식명칭 | Seonghyeol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죽계로 459-99[덕현리 277]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박병선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개설]
성혈사(聖穴寺)는 소백산 국망봉 아래의 월명봉 동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의상(義湘)이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성혈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성혈사의 명칭인 ‘성혈(聖穴)’은 사찰 남쪽에 있는 굴의 이름인데, 옛날 이곳 바위굴에서 성승(聖僧)이 나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의상이 부석사를 창건하기에 앞서, 소백산에 들어가 국망봉 아래의 월명봉 동남쪽 기슭에 초막을 짓고 기거하였으며, 부석사 완공 후 그 초막에 초암사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매일 초암사 지붕의 서까래가 없어지는 일이 일어나 의아하게 여긴 의상이 찾아보니 서까래가 인근 숲속에 쌓여 있었다고 한다. 이에 주위의 풀을 뜯어 초막을 지으니, 그것이 성혈사의 시초라고 한다. 또는 본래 초암사가 있었는데 여기서 수도를 하던 의상이 성혈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성혈사는 개창 이후 기록이 없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확인되고, 『여지도서(輿地圖書)』·『영남읍지(嶺南邑誌)』·『교남지(嶠南誌)』에도 기록된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사세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1553년(명종 8) 현재 성혈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나한전이 건립되었다. 1634년(인조 12)에는 각용이 사찰을 중창하였다. 1742년(영조 18) 7월부터 1746년까지 학순이 사찰을 중수하였다. 1775년(영조 51)에 신중탱화, 1883년(고종 20)에는 「아미타회상도」가 봉안되었다.
1937년에는 대웅전을 중창하였다. 1954년에는 칠성도와 산신도가 조성되었으며, 1956년에 대웅전을 중수하고, 2004년에 요사를 신축하였다. 2007년에는 문화재청이 나한전에 대한 실측조사를 하였다. 2008년 주지 등현이 부임하면서 누각, 주지채[요사이나 특별히 주지가 거처하는 곳], 심검당, 일주문, 요사 등을 신축하였다. 2016년 현재의 주지 등월이 부임하였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성혈사의 가람은 지형에 따라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좁은 계곡의 일부를 지형에 따라 절터로 조성하고 여기에 승방과 나한전을 남향으로 배치하였다. 경내에는 대웅전, 나한전, 산신각, 삼성각, 심검당, 함담정·누각, 요사 등이 배치되어 있다. 나한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은 근래에 들어 신축하였으며, 당호와 현판도 없는 건물이 여러 채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구조이다.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좌우에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을 협시로 하는 삼존불좌상을 봉안하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나한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다포식 맞배지붕 구조로 유형문화재인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하고 있다. 산신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산신탱화를 봉안하고 있다.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현재는 비어 있다. 함담정은 정자 형태의 작은 집으로 예전에는 스님이 거주하였으나 지금은 비어 있다. 심검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요사로 사용하고 있다. 누각은 2층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구조로 ‘성혈암(聖穴庵)’이라 쓴 현판이 있다. 그 외 도서관, 식당, 요사 등으로 사용하는 건물들이 있다.
[관련 문화재]
성혈사 경내에는 보물 1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점이 소장되어 있는데, 영주 성혈사 나한전[보물 제832호], 영주 성혈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02호], 영주 성혈사 신중탱화[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23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