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971
한자 浮石寺
영어공식명칭 Buseoksa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148]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676년연표보기 - 부석사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2018년 6월 30일연표보기 - 부석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
최초 건립지 부석사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148]
현 소재지 부석사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148]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의상
전화 054-633-3464
홈페이지 부석사(http://www.pusoksa.org)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개설]

부석사(浮石寺)는 676년(문무왕 16)에 의상(義湘)이 왕명을 받아 창건했으며,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부석사는 한국 10대 사찰의 하나로, 한국 불교사상의 맥을 이룬 화엄사상의 산실이며, 한국 불교문화의 성지이다. 부석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건립 경위 및 변천]

부석사는 676년 의상이 문무왕의 명을 받아 창건하였다. 『송고승전(宋高僧傳)』과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부석사 창건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의상은 불교를 배우기 위해 당나라에 갔는데, 그곳 등주(登州)에서 선묘(善妙)라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선묘의상을 사모하게 되고, 의상이 신라로 떠나자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었다. 귀국 후 의상봉황산에서 절을 지으려 하자, 도둑 무리가 방해하였는데, 이때 용이 된 선묘가 큰 바위로 변하여 도둑 무리를 위협하였다. 이에 도둑의 무리는 달아나게 되고, 마침내 의상이 절을 짓게 되었다. 의상선묘를 기리기 위하여 절의 이름을 ‘부석(浮石)’이라고 하였다. 현재 부석사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이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부석사는 1043년(정종 9) 원융국사(圓融國師)가 중건했고, 1376년(우왕 2) 무량수전(無量壽殿), 1377년 조사당(祖師堂)이 각각 중건되었다. 조선시대에 부석사를 중수한 기록은 자주 발견된다. 1490년(성종 21) 조사당을 중수하였고, 1493년 조사당에 단청을 칠했다. 1555년(명종 10) 화재로 인해 안양루(安養樓)가 소실되었으며, 1573년(선조 6) 조사당 지붕을 개수하였다. 1576년(선조 9)부터 1578년(선조 11)까지 석린(石麟)이 안양루를 중건하고 단청을 칠했다.

1611년(광해군 3)에는 폭풍우로 인해 무량수전의 중보[中樑]가 부러져 이듬해인 1612년에 중수하였고, 1723년(경종 3)에는 무량수전 본존불을 개금하였다. 1746년(영조 22)에 화재로 승당(僧堂)·만월당(滿月堂)·서별실(西別室)·만세루(萬歲樓)·범종각 등이 소실되었으나 1747년에 중수하였다. 1768년(영조 44)에는 무량수전 본존불을 개금하였다.

부석사가 16세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18세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물론 19세기 후반에 편찬된 『영남읍지(嶺南邑誌)』와 『교남지(嶠南誌)』에도 기록되어 있어 개항기까지 사세가 계속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16년 무량수전과 조사당을 해체·수리하였으며, 무량수전 서쪽에 있던 취원루를 동쪽으로 옮기고 ‘취현암(醉玄庵)’이라 하였다. 현재 취현암은 1997년에 조사당 옆쪽에 중건하였다. 1967년에 부석사의 동쪽 옛 절터에서 쌍탑을 옮겨 범종각 앞에 세웠고, 1969년에는 무량수전 기와를 갈았다. 1977년부터 1980년에 걸쳐 전체적으로 정화하면서 일주문·천왕문·승당 등을 신축하였다. 현재 주지인 근일(勤日)은 1990년에 부임하였으며, 지장전·관음전 등을 중창하고, 2011년 부석사박물관을 신축·개관하였다.

[활동 사항]

영주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부석사 일대에서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부석사화엄축제’를 개최하였으며, 지금은 ‘영주사과축제’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부석사는 불전, 석탑, 석등, 당간지주, 비석, 부도, 불상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전으로는 무량수전, 조사당, 자인당, 응진전, 취현암, 지장전, 관음전, 삼성각, 응향각, 선묘각, 단하각, 화엄선원, 장경각, 선열당, 삼보실, 부석사박물관, 안양루, 범종루, 원융국사비각(圓融國師碑閣), 천왕문, 일주문 등이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 팔작지붕 구조로 부석사의 중심 건물이며 국보인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을 봉안하고 있다. 영주 부석사 조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의상대사진영」을 봉안하고 있다. 원래 조사당 벽면에 있던 6폭의 벽화인 부석사 조사당벽화는 현재 부석사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인 자인당에는 보물로 지정된 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북지리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구조인 삼성각은 조선 중기 건물로 독성·산신·칠성의 탱화와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봉안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인 응진전에는 석가여래상과 16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인 선묘각에는 전설로 전해오는 선묘의 화상이 있다. 역시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인 단하각에는 생쥐를 잡는 나한상이 있다.

석탑에는 무량수전 동쪽에 있는 부석사 삼층석탑과 종루 앞에 있는 부석사 삼층석탑이 있다. 이 밖에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 부석사 원융국사비, 동·서부도, 고려시대 불상으로 인근에 있던 것을 옮겨온 소천리 석불좌상과 임곡리 석불입상 등이 있다.

[관련 문화재]

부석사는 주요 문화재가 많은 사찰로 국보 5점, 보물 6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점을 보유하고 있다. 국보에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 영주 부석사 조사당[국보 제19호],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 부석사 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가 있다. 보물에는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보물 제735호], 영주 부석사 오불회 괘불탱[보물 제1562호], 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1636호]이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에는 부석사 원융국사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와 부석사 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이 있다.

부석사는 통도사·봉정사·법주사·마곡사·선암사·대흥사와 함께 2018년 6월 30일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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