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977 |
---|---|
한자 | 榮州鄕校 |
영어공식명칭 | Yeongju Local Confucian School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명륜길 76[하망동 167]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백지국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433년 - 영주향교 중수 및 하마비 건립 |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577년 - 영주향교 중수 및 대성전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578년 - 영주향교 동재·서재 건립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588년 - 영주향교 동무·서무 건립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38년 - 영주향교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16년 - 영주향교 명륜당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19년 - 영주향교 전사청·공억사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72년 - 영주향교 보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85년 - 영주향교 대성전·신문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94년 - 영주향교 명륜당 보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53년 - 영주향교 보수 |
이전 시기/일시 | 1968년 - 영주향교 영귀루 영주시 가흥동 영주여자중학교에서 영주시 하망동으로 이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0년 - 영주향교 명륜당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5년 - 영주향교 대성전 및 명륜당 단청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4년 - 영주향교 명륜당·동무·서무·동재·서재 단청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5년 8월 5일 - 영주향교 대성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호 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7년 - 영주향교 대성전·부속건물 단청 및 명륜당·동무·서무·동재·서재 보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0년 - 영주향교 보수 |
이전 시기/일시 | 1991년 - 영주향교 영귀루 이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1년 - 영주향교 영귀루 단청 및 석축 조성 |
이전 시기/일시 | 1993년 - 영주향교 명륜당 이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4년 - 영주향교 일곽 보수 |
문화재 해지 일시 | 2012년 10월 22일 - 영주향교 대성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호 지정 해제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10월 22일 - 영주향교 대성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6호 지정 |
현 소재지 | 영주향교 - 경상북도 영주시 명륜길 76[하망동 167] |
성격 | 향교|공립교육기관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대성전]|홑처마 맞배지붕[동·서무]|홑처마 맞배지붕[신문]|홑처마 맞배지붕[명륜당]|홑처마 맞배지붕[동·서재]|홑처마 맞배지붕[영귀루] |
정면 칸수 | 3칸[대성전]|3칸[동·서무]|1칸[신문]|5칸[명륜당]|3칸[동·서재]|5칸[영귀루] |
측면 칸수 | 2칸[대성전]|2칸[동·서무]|1칸[신문]|2칸명륜당]|2칸[동·서재]|1칸[영귀루] |
소유자 | 경북향교재단 |
관리자 | 경북향교재단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영주향교 대성전]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하망동에 있는 조선시대 공립교육기관.
[개설]
영주향교(榮州鄕校)는 조선시대 영천군(榮川郡) 지역 유생들이 머물며 수학하는 교육 공간이자, 공자(孔子)를 비롯한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제향 공간이었다. 옛 영천군 지역의 유력한 재지세력(在地勢力)들은 영주향교를 출입하면서 유학을 공부하고 향사를 주관하였다. 또한, 향론을 형성하는 등 향촌 자치 기구로 향교를 활용하였다. 하지만 16세기 이후 영주향교는 운영상 어려움과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 교육 기능은 약화하고, 제향의 기능만 유지되었다.
[위치]
영주향교는 영주 시내 북쪽에 있는 철탄산 남쪽 기슭에 남향하여 자리 잡고 있으며, 영주향교 남쪽에는 영주여자고등학교가 이웃하여 있다.
[변천]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지리지와 읍지, 향교에 있는 각종 기문 등에 따르면 지영주군사(知榮州郡事)로 부임한 하륜(河崙)이 1368년(공민왕 17) 영주향교를 창건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도전(鄭道傳)이 쓴 정운경(鄭云敬)의 행장에는 정운경이 10여 세의 나이 때 영주향교를 출입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이보다 앞선 시기에 영주향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433년(세종 15) 군수 반저(潘渚)가 영주향교를 중수하고 하마비를 건립하였다. 군수 이희득(李希得)이 1577년(선조 10)과 1578년 영주향교를 중수하고 동재와 서재 등을 건립하였다. 1588년(선조 21) 군수 이대진(李大震)이 왕명으로 동무와 서무를 신축하고, 명륜당을 남쪽으로 옮겨 세우면서 완연한 향교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이후 근대까지 영주향교는 중건과 중수를 통해 지속해서 관리되었다. 해방 이후 영주여자중학교가 설립되어 영주향교 건물 일부를 교사로 사용하였으나 곧 이전하였다. 이후 중건 및 보수, 명륜당·영귀루 이건 등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태]
영주향교는 대성전·동무·서무·신문·명륜당·동재·서재·영귀루·교직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주향교의 가장 높은 곳에 대성전을 놓고 명륜당은 대성전과 동일 선상에 두었다. 각 건물은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심으로 남북 종축선을 따라 좌우 대칭으로 배치된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구조이다.
영주향교의 가장 첫 건물은 영귀루이다. 2층의 누각으로,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한때 영주여자중학교의 부속 건물로 이용되다가 1991년 지금의 위치로 이건되었다. 영귀루 옆으로 강학 공간인 명륜당과 동·서재가 자리 잡고 있다. 명륜당은 원래 동재 후면에 있었으나, 1992년 현 위치로 이건하면서 새롭게 배치되었다. 영주향교 명륜당은 전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명륜단은 단 차이를 두어 전면은 상하층 기둥으로 구분하고, 계자각(鷄子脚) 난간을 둘러 중층 건물처럼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동·서재는 각각 전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영주향교의 동·서재 뒤로 제향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제향 공간의 출입문인 신문은 단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향교의 신문은 일반적으로 내삼문이라 하여 3칸 규모의 솟을지붕 혹은 평지붕으로 되어 있으나, 영주향교의 경우 단칸 규모의 문을 두었다. 신문을 통과하면 전면에 대성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무와 서무가 있다. 제향 공간의 중심 건물인 대성전은 전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장대석 기단 위에 상면을 다듬은 주초를 놓았다. 흘림이 있는 원주를 세워 전퇴를 벽체 없이 개방하고, 고주열에 벽체를 한 전퇴형의 평면으로 되어 있다. 영주향교 대성전 측면 어칸은 넓게 하고 전 내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전면 어칸에는 중앙에 두 짝 세살문, 좌우에는 외짝 세살문을 달았으며, 좌우 협칸 전면에는 ‘만(卍)’자 살광창을 두었는데, 이는 풍기향교 대성전의 정면 구성과 동일한 수법이다. 동·서무는 각각 전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그 외 영주향교 관리자의 살림집인 주사가 서재 옆에 있으며, 영주향교 밖에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현황]
영주향교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4명의 장의가 돌아가며 분향 행사를 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 양력 5월 11일과 9월 28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영주향교 대성전은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호로 지정되었다가, 2012년 10월 22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6호로 승격·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주향교는 문헌상 고려 후기의 사적이 남아있어, 그 유래가 오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영주향교는 비교적 이른 시기 건립되어 유교 교육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며 선비의 고장이라는 지역 정체성 형성에 이바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