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0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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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竹林里 |
영어음역 | Jungnim-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길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죽림리의 이름은 말 그대로 마을 주변에 대나무가 많아서 지어졌다고 한다. ‘죽림청풍(竹林淸風) 고사용출(高士聳出)’이라 하여, 예로부터 뛰어난 선비가 많이 배출된 마을로 전해온다. 원죽마을은 죽림마을이 처음 터를 잡았던 곳이다. 신송마을은 저수지 부근에 있는 마을로, 마을 주변에 20여 기의 고인돌이 전해오고 있어 오랜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특히 1960년대 밭을 개간할 때 고인돌 무덤방에서 돌로 만든 쟁기가 발견되었는데, 여수반도에서 선사시대 이전부터 농사를 지었던 흔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상금마을과 하금마을은 처음 ‘쇠실’이라고 불리던 지역을 한자로 ‘금곡(金谷)’이라 하였다가, 위·아래 마을로 나뉘게 된 이름이다. 쇠실 일대는 예로부터 철이 많이 나던 지역으로 알려져서, 일제강점기에는 금을 채굴하던 광산까지 여러 군데 들어섰다. 그러나 경제성이 떨어지면서 폐광되었다. 마을 아래로는 관기들에 물을 공급하는 죽림저수지가 조성되어 있어 민물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무선산 아래에 자리한 차동은 ‘수리골’이라고 불렸던 옛 이름에서, ‘수리’를 훈이 비슷한 ‘수레 차(車)’로 바꿔서 차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차동 주변의 땅 이름으로는 작은 하천 여러 개가 모여서 요강 모양의 도랑이 되었다는 ‘요강더리’, 돌무덤이 많다는 ‘다무락들’, 논에 물이 많다는 ‘시우더리’, 풀무 모양의 골짜기 ‘불무골’ 등의 이름들이 전해온다.
[형성 및 변천]
여수군이 설립될 때 덕안면 지역으로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금곡·차동·덕현·중금·하금·신송리를 병합하여 소라면에 편입하면서 법정리인 죽림리가 되었다. 1949년 8월 15일 여수시 승격 분리로 여천군 소라면이 되었으나, 1998년 4월 1일 삼여통합에 따라 여수시 소라면이 되었다.
[자연환경]
죽림리는 화양면 지역과 소라면 서부 지역을 이어주는 서여순로가 갈라지는 삼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현황]
2022년 9월 기준, 6,102가구에 15,618명[남 7,929명,|여 7,689명]이 살고 있다. 원죽마을·신송마을·상금마을·하금마을·차동(車洞)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0년 후반 차동과 신송 사이에 있던 ‘황새등’을 평지로 만들면서 새로운 주택단지가 조성되어, 삼일 지역의 중흥동 이주민이 집단 이주하였다. 2020년 본격적으로 죽림1지구 택지개발을 시작하였으며, 2024년 12월에 준공 예정이다. 마을 서쪽으로 관기들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죽림저수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