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법리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459
한자 新法里遺蹟
영어공식명칭 Remains in Sinbeop-ri
이칭/별칭 아산 신법리유적,아산 신법리 토루 유적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신법리 46-9
시대 선사/선사,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이판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12월~1999년 8월 - 충청문화재연구원 신법리유적 발굴 조사
원소재지 신법리유적 -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신법리 46-9 지도보기
성격 복합 유적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신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위치]

신법리유적은 국도 34호선 신남교차로와 둔포교차로 중간의 도로 구간에 해당한다. 도로가 개설되기 전의 지형은 인접한 남쪽의 용당산에서 뻗은 가지 능선이 유적을 지나쳐 북쪽의 용정골 주변 평지로 이어진다. 북쪽에는 안성천에 합류하는 둔포천과 주변의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주변의 산지는 모두 낮아 구릉 지형을 이룬다.

[발굴 조사 경과]

신법리유적은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의 국도 34호선 도로 확·포장 공사 계획 구간[영인~둔포]을 지표 조사하여 처음 학계에 보고되었다.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현재 충청문화재연구원] 주관으로 1998년 8월 신법리 일원 유물산포지에 대한 시굴 조사를 거쳐 1998년 12월부터 1999년 8월까지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초기국가시대 마한의 주거지, 널무덤[토광묘(土壙墓)], 독널무덤[옹관묘(甕棺墓)], 고려 및 조선시대 널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형태]

신법리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7기, 초기 국가 시대 마한의 주거지 1기, 널무덤 4기, 독널무덤 2기, 고려 및 조선시대 널무덤 13기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정상부에 직사각형[장방형(長方形)] 주거지 1기가 자리하고, 방형계(方形系) 및 원형계(圓形系) 주거지 6기는 서쪽 사면에서 확인되었다. 직사각형 주거지는 내부에 화덕자리[노지(爐址)]와 기둥구멍[주공(柱孔)] 등의 내부 시설이 있다. 원형 주거지는 크기가 작은 편으로 화덕자리나 타원형 구덩이 등 내부 시설은 없다.

초기국가시대 고분으로는 널무덤 4기와 독널무덤 2기가 조사되었다. 널무덤은 높이 40~43m 지점을 따라 등고선과 평행하게 조성하였고, 대부분 평면 직사각형으로 260㎝ 이상의 길이를 보인다. 그중 4호 널무덤은 170㎝ 정도로 작은 편이고, 1호 널무덤은 방공호 축조 과정에서 대부분 훼손되었다. 독널무덤은 해발 41~43m 지점을 따라 위치한다. 1호 독널무덤은 등고선과 직교하고 길이 85㎝, 폭 36㎝, 깊이 18㎝ 정도로 남아 있다. 두 개의 계란 모양의 토기[장란형토기(長卵形土器)] 입구를 맞대어 독널[합구식 옹관(合口式甕棺)]로 사용하였다. 2호 독널은 등고선과 평행하고 길이 70㎝, 폭 52㎝, 깊이 14㎝ 정도로 남아 있다. 훼손이 심해 자세한 상황을 알 수는 없다.

[출토 유물]

신법리유적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는 민무늬토기 조각[무문토기편(無文土器片)], 돌끌[석착(石鑿)], 숫돌[지석(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초기 국가 시대 1호·2호 독널무덤에서 쇠투겁창[철모(鐵矛)]이 출토되었는데, 자루를 연결하는 부분은 끝이 수평을 이루고 측면에 구멍이 뚫려 있다. 이와 만나는 날 시작 부분은 돌출되어 있다. 3호 독널무덤에서는 쇠낫[철겸(鐵鎌)]이 출토되었다. 1호 독널무덤에서는 독널로 사용된 계란 모양의 토기가 있고, 2호 독널무덤에서는 독널로 사용된 항아리와 함께 내부에서 수정으로 만든 구슬과 호박으로 만든 구슬이 출토되었다.

[현황]

신법리유적은 국도 34호선 도로 구간 중 신남교차로와 둔포교차로 등의 공사가 완료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다. 충청문화재연구원 발굴 조사 보고서를 통해 유적 자료를 기록·보존하였다.

[의의와 평가]

신법리유적의 주거지는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를 지나 중·후기로 이어지는 문화 양상이 보인다. 서쪽으로 신남리 민무늬토기 산포지 및 간돌검[마제석검(磨製石劍)] 출토지가 인접해 있는데, 이 시기에 이르면서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둔포천 및 안성천 연안 지형에 이르기까지 아산 전역으로 확산하여 생활하였음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근거 유적이다. 그리고 초기국가시대의 무덤은 출토된 유물 중 쇠투겁창을 통해 볼 때, 충청남도 천안시 청당동유적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어 대체로 3~4세기 대로 추정된다. 유적에서 함께 확인된 주거지 역시 3~4세기 무렵으로 추정되고 있어 둔포천과 안성천이 보이는 얕은 구릉지대를 따라 소규모이지만 주거생활이 이루어졌음을 잘 보여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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