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강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664
한자 晉州姜氏
영어공식명칭 Jinju Ga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동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필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진주 - 경상남도 진주시
입향지 배방읍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지도보기
입향지 송악면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세거지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세거지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강자위 묘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동화리 분토골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강자해 묘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동화리 지도보기 동배골
성씨 시조 강이식
입향 시조 강자위|강자해

[정의]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자위와 강자해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세거성씨.

[개설]

진주강씨(晉州姜氏)는 경상남도 진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며 시조(始祖)는 강이식(姜以式)이고, 아산시의 입향조(入鄕祖)는 강자위(姜自渭)와 강자해(姜自海) 형제이다.

[연원]

염제(炎帝) 신농(神農)의 후예로 중국에서 여러 세대를 이어오다가 한 일파가 한반도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시조는 6세기 말 고구려의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를 역임한 강이식 장군이다. 강이식은 영양왕 때 수나라 문제(文帝)가 고구려를 위협했을 때 정병 5만 명을 이끌고 중국 요동(遼東)의 임유관(臨渝關)으로 출병하여 말갈(靺鞨) 병사 1만 명으로 요서(遼西)를 공격하여 공을 세웠다. 수나라 문제의 2차 출병 때는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이 육군을 맡고, 강이식 장군이 수군을 맡아 대항하였다.

통일신라 헌강왕 때 태중대부(太中大夫) 판내의령(判內議令)으로 재임 중이던 강진(姜縉)이 진양후(晉陽候)로 봉해지면서 본관을 진주로 하게 되었다. 진주강씨는 박사공파(博士公派), 소감공파(少監公派), 관서공파(關西公派), 은열공파(殷烈公派), 인헌공파(仁憲公派)가 5대파를 형성하고 있다.

[입향 경위]

아산 지역의 입향조는 은열공파 10세손인 강자위, 강자해 형제이다. 강자위는 음서(蔭敍)[공신이나 전·현직 고관의 자제를 과거에 의하지 않고 관리로 채용하던 일]로 관직에 나아가 통훈대부(通訓大夫) 북청판관(北靑判官)을 지내고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록되었다. 후손들은 강자위를 ‘북청공(北靑公)’이라고 부른다. 강자해는 사맹(司猛)을 거쳐 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를 지내 후손들이 ‘사맹공(司猛公)’이라 부른다. 강자위와 강자해 형제가 언제, 어떤 사유로 입향하였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현황]

강자위의 후손들은 아산시 배방읍 신흥리중리에 자리 잡아 인근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강자해의 후손들은 아산시 송악면을 중심으로 아산시 여러 지역에 퍼져 거주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진주강씨는 전국적으로 117만 6847명이 있고, 충청남도에 4만 6076명이 살고 있다.

[관련 유적]

강자위의 묘는 아산시 송악면 동화리 분토골에 있고, 강자해의 묘는 아산시 송악면 동화리 동배골에 있다. 아산시 송악면 동화리진주강씨를 위한 서당건물인 아산 원천재(牙山原泉齋)가 있는데, 2009년 10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02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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