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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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南山城 |
이칭/별칭 | 봉당고성,봉당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봉당리 산9-9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심상육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400년 - 고남산성 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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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 시기/일시 | 1430년 - 고남산성 폐성 |
현 소재지 | 고남산성 -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봉당리 산9-9 |
성격 | 산성 |
양식 | 테뫼식 토석혼축 |
크기(높이,길이,둘레) | 400m[둘레]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봉당리에 있는 테뫼식의 토석혼축 산성으로 1400년부터 1430년까지 보령현의 치소지로 사용된 산성.
[개설]
고남산성(古南山城)은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봉당리와 오천면 갈현리 경계의 산정부에 있는 테뫼식 토석혼축 산성이다. 1400년에 봉당고성(鳳堂古城)[봉당성(鳳堂城)]을 석성으로 축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남산성은 1430년 보령현의 읍성으로 보령성곽이 축성되기 전까지 사용된 보령현의 읍치(邑治)였다. 성 내부에서는 토기와 자기, 기와의 파편이 흩어져 있는데, 백제 시대 토기와 청자의 파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초 축조되기 전부터인 삼국 시대부터 산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건립 경위]
삼국~고려 시대의 보령 지역 중심지는 평지에 가까운 구보령성지(舊保寧城址)인데, 서해안에 자리하여 왜구의 침탈이 잦은 곳이어서 조선 초인 1400년에는 봉당고성인 고남산성을 석축으로 축조하여 보령현의 읍치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고남산성이 산정에 있는데 샘이 없어, 1430년 다시 평지에 가까운 보령성곽을 축조하여 보령현의 읍치로 사용하고 고남산성은 폐성(閉城)하였다.
[위치]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봉당리와 오천면 갈현리 경계의 높이 100m 정도의 산정부에 있다. 고남산성은 봉당천의 서쪽인 봉당2리 마을회관이 들어선 고남동마을 뒷산에 있다. 고남동마을과 고남산성 사이에는 서해안고속국도가 있다.
[형태]
고남산성은 100m 정도의 야산 7부 능선에 성벽이 축조되어 산정이 성내에 포함된 반달꼴의 형태이다. 성벽은 마치 2중의 계단식 형태로 평평한 면을 형성하고 있고, 토루(土壘) 아래에서 석축이 관찰되어 토석혼축 성임을 알 수 있다. 고남산성은 성 안에 우물이나 샘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고, 둘레는 2,109척(尺)[63,909㎝]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약 400m 정도 남아 있다.
[현황]
고남산성은 조선 전기까지만 사용된 산성으로 계단상의 토루처럼 남겨진 성벽 흔적만 남아 있다. 성안에서 토기와 기와 파편이 산포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고남산성은 조선 전기에 보령현의 중심지로 사용된 산성으로 과거 보령의 중심지 이동 모습을 보여 주는 학술적 가치가 높은 산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