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8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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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聖住寺址石燈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정성권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4년 9월 1일 - 성주사지석등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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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성주사지석등 -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 |
성격 | 석등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 220㎝[높이] |
소유자 | 보령시 |
관리자 | 보령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3호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앞에 있는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 사이에 건립된 석등.
[개설]
석등(石燈)은 불을 밝히는 돌로 만든 등구(燈具)로, 석탑(石塔) 및 승탑(僧塔)과 함께 불교 석조 문화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석등은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하며, 부처의 지혜와 광명을 상징한다. 또한 부처에게 공양을 드린다는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다.
석등은 등불을 두는 화사석(火舍石)을 받치는 기둥인 간주석(竿柱石)의 모양을 중심으로 간주식(竿柱式) 형식, 고복(鼓腹) 형식, 쌍사자(雙獅子) 형식 등으로 분류한다. 고복 형식 석등의 대표적인 사례는 남원 실상사 석등(南原 實相寺 石燈)이 있다. 쌍사자 형식의 석등으로는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報恩 法住寺 雙獅子 石燈)이 대표적이다. 성주사지석등(聖住寺址石燈)은 간주석이 평면 팔각형 모양의 기둥으로, 간주식 형식의 석등이다. 성주사지석등은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五層石塔) 앞에 세워져 있어, 석탑에 등(燈) 공양을 올리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위치]
성주사지석등은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앞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전체 높이는 220㎝이다. 기단부는 정사각형의 방형대석(方形臺石) 위에 원형의 연화대석(蓮華臺石)이 함께 한 돌로 만들어졌다. 연화대석은 팔엽의 단판(單瓣) 연화문(蓮華文)이 중첩된 모양이다. 하대석인 연화대석 밑에는 아무런 받침 없이 방형의 대석과 연결된다. 방형의 대석은 하대하석(下臺下石)이지만 지대석 역할을 하며, 측면에는 2개의 안상(眼象)이 음각으로 조각되어 있다.
팔각의 간주석은 세장한 편이며 간주석 상단과 하단의 너비 차이가 뚜렷하다. 간주석 위에 있는 상대석은 하대석과 동일한 문양의 연판이 있다. 등불을 두었던 평면 팔각의 화사석은 4면에 화창(火窓)이 뚫려 있으며, 화창이 없는 곳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지붕돌인 옥개석은 처마 두께가 두꺼운 편이나 처마 끝부분이 상승감 있게 올라가 있다. 옥개석 상면 중앙에는 상륜부 보주(寶珠)[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를 끼울 수 있는 구멍이 있다.
통일 신라 시대 간주식 형식의 팔각 석등은 연판문이 있는 하대석 아래에 비슷한 크기의 안상이 새겨진 팔각 하대하석이 함께 조성되는 사례가 전형적인 통일 신라 석등의 모습이다. 영주 부석사 무령수전 앞 석등(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 石燈)의 경우, 성주사지석등처럼 하대석 아래에 하대석보다 넓은 방형의 하대하석이 있으나, 하대하석 상면에 세밀한 하대석 받침이 있으며, 방형의 하대하석 아래의 지대석 상면에도 하대하석 받침이 조각되어 있다.
성주사지석등의 기단부는 영주 부석사 무령수전 앞 석등과 구조적 측면에서 유사하나, 하대석 받침과 지대석 등이 생략되어 있어 더 간략화된 측면이 있다. 이 밖에 간주석의 아래 부분과 상단 부분의 너비 차이가 상대적으로 큰 편이며, 옥개석의 처마 두께가 두꺼운 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성주사지석등은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 사이에 조성된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과 함께 만들어진 석등으로 여겨진다.
[현황]
성주사지석등은 현재 지붕돌 위의 상륜부는 결실되어 있는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이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保寧 聖住寺址 大朗慧和尙塔碑)나 김립지찬 성주사비(金立之撰 聖住寺碑) 등에 언급되지 않았고, 오층석탑이 주로 고려 초 이후 유행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은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가 조성된 이후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앞에 세워져 있는 성주사지석등은 석탑과 한 세트로 조성된 석등이므로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