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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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총언을 시조로 하고 이말정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 성씨. 시조(始祖) 이총언(李忩言)은 신라 헌안왕(憲安王) 시기 벽진 태수(碧珍太守)로 있을 때 용맹을 떨쳤으며, 고려 태조를 도와 삼중대광개국공신으로 벽진대장군에 봉해졌다. 아들 이영(李永)은 태조(太祖)의 부마(駙馬)로 대제학(大提學)이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벽진(碧珍)으로 하고 세계를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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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 있는 벽진이씨 후석파 재실. 영모헌은 대한민국 건국 후 제3대 법무부장관을 지낸 동초(東樵) 이우익(李愚益)[1890~1982]이 아버지 후석 이주후(李周厚)[1873~1957]를 추모하기 위해 1960년대 지은 재실이다. 이주후는 안동 도산서원 원장을 지낸 근대기 유학자였다. 평소 효성이 지극했던 동초 이우익이 20세기 초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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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심천리에 있는 재실. 오도재는 조선 중기 유학자 창주(滄洲) 이창진(李昌鎭)[1619~1684]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1960년대에 건축한 재실이다. 이창진은 벽진이씨 완석정(浣石亭) 이언영(李彦英)의 둘째아들로 자가 운장(雲長)으로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했으며, 재지(才智)가 명민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1679년(숙종 5)에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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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출신의 일제강점기 법조인 및 현대 교육자. 이우식은 일제강점기에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판사와 변호사를 역임하였다. 제1공화국에서는 전주지방법원장과 대법관을 역임하다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교육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이우식은 벽진이씨로 완정(浣亭) 이언영(李彦英)의 후손이자, 후석(后石) 이주후(李周厚)의 차남이다. 자는 경소(敬蘇), 호는 우당(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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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출신의 일제강점기 및 현대 법조인. 이우익은 일제강점기에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판사와 변호사를 역임하였고 해방 후 검찰 사무의 기초 확립, 6·25전쟁 시기 법무 행정을 원만히 처리하는 등 국가질서 확립에 이바지한 공이 크다. 이우익은 벽진이씨로 완정(浣亭) 이언영(李彦英)의 후손이자, 이주후(李周厚)의 아들이다. 자는 경우(敬友) 호는 동초(東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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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에 건립되었을 것이라 추측되는 양반사대부 가옥 경수당은 벽진이씨 후석파 종택이다. 지붕의 망와에 ‘청 건륭 49년(1784)’ 또는 ‘도광(道光, 1821~1850)’이라고 명문을 새긴 것이 있어 18세기 말에 처음 지은 후 19세기 중엽에 수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웃갓마을 북쪽 끝에 위치하는 경수당 뒤편으로는 나지막한 동산이 자리 잡고 있다. 경수당은 벽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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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및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유생.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공근(公瑾), 호는 후석(后石). 이주후는 조선 말기 및 일제강점기 도내에서 명망 있던 유학자로서 평생 학문에 전념하였고, 법무장관 이우익(李愚益), 대법관 이우식(李愚植), 사업가 이우혁(李愚奕) 등이 아들이다. 이주후는 벽진이씨 이만희(李萬熙)의 아들로 1873년(고종 10)에 경상북도 칠곡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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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에 있는 조선 후기 양반 주택. 지붕의 망와에 ‘청 건륭 49년(1784)’ 또는 ‘도광(道光)’이라고 명문을 새긴 것이 있어 18세기 말에 처음 지은 후 19세기 중엽에 수리했음을 알 수 있다. 중사랑채 동측 토석담을 ‘담양담’이라 하는데, 이는 담양부사(潭陽府使)를 지낸 석담 이윤우의 선정(善政)에 보답하기 위해 담양 사람들이 와서 담을 쌓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