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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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壽同縣 |
영어음역 | Sudong-hyeon |
영어의미역 | Sudong-hyeon Administrative District |
이칭/별칭 | 옥산(玉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구미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통일신라시대에 칠곡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제도.
[개설]
수동현(壽同縣)은 757년(신라 경덕왕 16) 이후부터 940년(고려 태조 23)까지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으로, 고려시대에는 인동현, 조선시대에는 인동현 또는 인동도호부로 불렸다. 1895년 지방 행정 구역 개편 때 인동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1978년 선산군 구미읍[경상북도 구미출장소]과 칠곡군 인동면을 합쳐 구미시로 편제되었다.
[관련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잡지3 지리1 신라에서는 “성산군(星山郡)은 본시 일리군(一利郡)인데, 경덕왕(景德王)이 [성산으로] 개명(改名)하였다. 지금의 가리현(加利縣)이니 영현(領縣)이 넷이다. 수동현은 본시 사동화현(斯同火縣)으로, 경덕왕이 [수동으로] 개명하였는데, 지금은 미상이다”라고 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 권57 지11 지리2 상주목 경산부에서는 “경산부(京山府)는··· 충선왕 2년에 전국의 목이 없어짐에 따라 낮추어서 경산부로 하였다. 이 부에 가야산(伽倻山)이 있고 이 부에 소속된 군이 1개, 현이 14개 있다.··· 인동현(仁同縣)은 현종 9년에 본부에 소속되었다. 공양왕 2년에 감무를 두어 약목현을 여기에 소속시켰다”라고 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세종 지리지 경상도 안동 대도호부 인동현에서는 “김부식(金富軾)의 『신라지리지(新羅地理誌)』에는 ‘성산군의 영현(領縣)이 넷인데, 수동현(壽同縣)은 본래 사동화현(斯同火縣)이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은 자세히 알 수 없다’고 하였으나, 지금 경토(境土)로써 이를 상고하건대, 수동을 인동(仁同)으로 고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고려 현종 무오년에 경산부(京山府) 임내(任內)에 붙였다가, 공양왕 2년 경오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고, 약목현(若木縣)을 이에 붙였다. 속현(屬縣)이 하나이니 바로 약목현(若木縣)이다. 본디 대목현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쳐서 계자(谿子)로 하여, 성산군의 영현(領縣)을 삼았고, 고려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그대로 경산부에 붙였었다”라고 되어 있다.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별집 권16 지리전고(地理典故) 주(州)와 군(郡)에서는 “신라 때의 사동화현(斯同火縣)인데, 인동으로 고쳤다. 선조 갑진년(甲辰年)에 부로 올렸다. 서울과의 거리는 6백 리이다. 수동(壽同)·옥산(玉山)이라고도 한다. 약목현(若木縣)은 속현이고, 신라 때의 대목현(大木縣)이니, 칠촌(七村) 또는 곤산(昆山)이라고도 한다. 계자현(谿子縣)이라고 고쳤다. 소목현(小木縣)이 있다. 견훤이 벽진(碧珍)을 침공할 때, 대목·소목 두 고을의 곡식을 베어 버렸다고 하였는데 지금 어디인지 상세하지 않다”고 되어 있다.
[변천]
수동현은 757년(신라 경덕왕 16) 지방 행정구역 개편 때 사동화현(斯同火縣)의 명칭을 수동현으로 바뀌면서 생겨났다. 이 때 수동현은 성산군(星山郡)[현재 경상북도 성주군]의 속현(屬縣)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주군현(州郡縣) 개편 때 인동현(仁同縣)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018년(현종 9) 경산부(京山府)[현재 경상북도 성주군]의 속현(屬縣)으로 다시 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년)에 경산부에서 분리·독립되었다. 그와 더불어 인동에 감무(監務)를 설치하고 약목현(若木縣)을 영속(領屬)시켰다.
1413년(조선 태종 13) 전국의 감무(監務)를 혁파(革罷)할 때 인동현으로 개칭하면서, 현감(縣監)을 두었다. 1601년(선조 34) 찰리사(察理使)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가 인동의 주악(主嶽)인 천생산(天生山)의 성곽을 수축(修築)하여 관방(關防)의 요새로 부각됨에 따라, 1604년(선조 37) 7월에 도원수(都元帥) 한준겸(韓浚謙)에 의해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면서 조방장(助防將)을 설치하고 부사(府使)가 겸임하였다. 1606년(선조 39) 선산부(善山府)[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의 관할이었던 해평현(海平縣)이 인동부(仁同府)의 속현이 되었다. 그 뒤 1608년(선조 41)에 해평현이 다시 선산부로 환속되고, 조방장(助防將)이 혁파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편 때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를 인동군(仁同郡)으로 개칭하면서 읍내면(邑內面), 북면(北面), 동면(東面), 장곡면(長谷面), 문량면(文良面), 석적면(石赤面), 북삼면(北三面), 약목면(若木面), 기산면(岐山面) 9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 3월 1일 인동군을 폐지하여 칠곡군에 편입시키고, 같은 해 4월 1일 읍내면과 북면을 합쳐서 인동면(仁同面)으로 개편되었다. 1978년 2월 15일 선산군(善山郡) 구미읍(龜尾邑)과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이 합쳐 구미시(龜尾市)로 탄생되었다. 1983년 2월 15일 인동(仁同)의 인의동(仁義洞), 황상동(黃桑洞), 구평동(九坪洞)을 합쳐서 인동동(仁同洞)이 되었다.
[현황]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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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6 | [변천] 수정 | <변경 전> 선산군(善山郡), 구미읍(龜尾邑),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을 합쳐 구미시(龜尾市)로 탄생하였다. <변경 후> 선산군(善山郡) 구미읍(龜尾邑)과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이 합쳐 구미시(龜尾市)로 탄 생되었다. |
2013.08.06 | [현황] 수정 | <변경 전>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에 해당한다. <변경 후>현재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가산면 일부와 구미시 인동동 ․ 진미동 ․ 양포동에 해당된다. |
2011.05.30 | 내용 수정 | 개설부분 구미시 편제 지역 수정 |